출판사 제공
박복영 시인의 새 시집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별이 있었다』가 시작시인선 571번으로 출간됐다.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시와 시조를 발표해 온 그는 이번 시집에서 소멸 직전의 존재들이 온몸으로 견뎌내는 ‘안간힘’을 중심으로, 노동과 침묵을 통해 인간 존엄의 최소한을 탐구한다.
표제작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별이 있었다」는 불탄 집을 배경으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별의 울음을 그린다. 시인은 이렇게 쓴다.
“불탄 집에 이별이 가득하다 / 아직 때가 아니라는 이별을 만나니 다른 이별이 운다 … 울음은 도착하지 않은 이별”
타다 만 사진첩을 놓지 못하는 늙은 사내의 모습, 손바닥에 찍힌 주름에서 찢어지는 추억, 햇빛이 방심의 부조리를 말하는 장면은, 이별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삶을 무너뜨린 고통을 생생히 보여준다.
시집은 네 개의 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폐광촌의 편지」, 「불법체류자」 같은 작품을 통해 사회적 소외와 고단한 노동을 담아낸다. 2부에서는 「주문진」, 「보호본능」 등에서 사랑과 관계의 긴장을 탐구하며, 3부에서는 「내 몸에 숨어 사는 울음이 있다」, 「당신이 아프면 내가 아팠다」 같은 작품으로 타자의 고통을 자기 몸에 받아들이는 언어를 보여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 「반지하방」, 「군중들」, 「호모 엠파타쿠스」 등을 통해 현대인의 삶과 공감의 가능성을 묻는다.
문학평론가 오민석은 “박복영 시인은 ‘당신이 아프면 내가 아팠다’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타자의 고통을 자기 몸에 오래 머물게 하며, 그 고통을 언어와 시로 변환한다”고 평했다. 이는 롤랑 바르트의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는 선언, 데리다의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과도 맞닿아 있다.
박복영의 시는 화려한 수사보다 구체적인 감각 언어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드러낸다. 시장 좌판의 젖비린내, 노동자의 땀과 숨결, 소외된 이들의 눈물이 모두 순수한 생명의 증거로 시 속에 자리한다. 또한 법정의 조서나 묵비권 같은 사법적 언어를 차용해 존재 증명을 ‘심문’으로 그려내며, 언어가 거짓이 될 때 침묵이 진실을 말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별이 있었다』는 절망을 노래하는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도착하지 않은 이별을 미래에 대한 긴장과 구원의 희망으로 전환한다. 고통받는 모든 존재를 따뜻하게 품으며, 삶의 고단함 속에서 견디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을 담아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