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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이름 부르기, 『우리는 기꺼이 아무것도 아니어서』(김지숙, 걷는사람)

애도를 유예하며 슬픔 곁에 머무는 목소리의 시집

장세환2026년 9월 8일 오후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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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꺼이 아무것도 아니어서.jpg출판사 제공

김지숙 시인의 첫 시집 『우리는 기꺼이 아무것도 아니어서』가 걷는사람 시인선 161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이 시집은 애도의 말이 흔히 요구하는 ‘앞으로 나아감’을 거절하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시인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기억해야 할 너의 이름을//나지막이 부르는 일/그것뿐이다”라는 구절로 첫머리를 열며, 대답 없는 이름을 끝까지 부르는 무력하고도 집요한 행위를 시집 전체에 걸쳐 밀고 나간다.

시집은 네 개의 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난 너의 무덤이 될 거야, 넌 나의 묘비명이 될 거야”라는 고백처럼, 사랑과 죽음이 뒤섞인 호명의 순간을 보여준다. 2부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슬픔의 일을 했다”라는 제목처럼, 슬픔을 정리하기보다 끝까지 감내하는 태도를 담는다. 3부에서는 ‘앨리스’ 연작을 통해 개인적 서사가 환상으로 일그러진 세계를 펼치며, 4부에서는 “우리 없는 자리마다 흔들리는 풀들”이라는 문장으로, 떠난 자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흔들리는 풍경을 그린다.

시집 속 ‘민수’는 부를 때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화자와 뒤섞인다. “민수는 민수가 아닌 나를 민수라 부르고/민수도 민수가 아니어도 민수가 되고”라는 구절은 호명의 행위가 정체성을 흔들고 확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우리는 그 모두에게 잊혀도 좋지, 우리는 기꺼이 아무것도 아니어서”라는 구절은 세상 전체에게 잊혀도 상관없다는 체념 속에서, 오직 한 사람에게만은 끝까지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다.

문학평론가 최진석은 해설에서 이 시집을 “되돌아오는 이름의 시간”이라 명명하며, 김지숙의 시가 사라진 존재를 붙잡아 소유하지 않고, 그 부재의 자리에서 오래 기다리며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른다고 평했다. 시인 신철규는 추천글에서 “사랑은 멀어짐과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멀어짐이 사랑을 증폭한다”고 말하며, 김지숙의 시가 끝나지 않는 이별과 끝없는 사랑을 동시에 담아낸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기꺼이 아무것도 아니어서』는 섣부른 위로를 건네며 슬픔을 매듭짓는 대신, 슬픔 곁에 머물기를 택하는 시집이다. 떠난 자의 이름을 오래 부르고, 그 흔적을 오래 들여다보는 언어로, 독자에게 상실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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