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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따라 흐르는 기억의 온도”, 『동강』 (박종욱, 보민출판사)

사랑과 상실, 늦은 후회와 생활의 풍경을 담담하게 건너는 시집

장세환2026년 5월 12일 오후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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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jpg출판사 제공

강은 흘러가지만 마음속 어떤 풍경은 오래 남는다. 퇴직 기자 출신 박종욱 시인이 지나온 시간과 사람의 흔적을 조용히 더듬은 시집 『동강』을 펴냈다.

보민출판사에서 출간한 이번 시집에는 강과 시장, 병원과 편의점, 겨울 아침과 오래된 사랑처럼 누구에게나 낯익은 생활의 풍경이 담겨 있다. 화려한 상징이나 과장된 감정보다는 살아낸 시간 끝에 남은 감정의 결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데 가까운 시집이다.

시인은 병을 앓고 쉬는 시간 속에서 오래 묵은 시편들과 최근의 글을 함께 묶었다. 정선의 강물과 금촌시장 골목, 철길과 병원 진료실, IPTV가 켜진 저녁 풍경까지 시 안으로 들어오며 한 사람의 지나온 계절을 차분히 복원한다.

표제작 「동강」은 단순한 자연시가 아니다. 강은 지나간 사랑과 후회, 사라진 시간과 삶의 무게가 흘러가는 마음의 자리처럼 읽힌다. “정선장 허탕 치고 와도 아라리 춤사위 / 막걸리 한 사발에 동강 유역 농부들 한숨은 깊어간다” 같은 구절에는 지역의 풍경과 사람의 체온이 함께 스민다.

시집 곳곳에는 늦은 나이에야 더 선명해지는 감정도 배어 있다. 「당신이 옳았습니다」, 「사람의 일」, 「그 사랑, 어리석음」 같은 작품들은 지나간 관계를 돌아보며 남겨진 감정의 잔향을 담담하게 꺼내 보인다. 사랑을 미화하기보다, 끝내 다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의 흔적을 오래 바라본다.

생활의 장면을 끌어오는 시선도 인상적이다. 「편의점 L씨」에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하루가 있고, 「의사」에는 늙어가는 몸 앞에서 느끼는 불안이 비친다. 「부피가 아니고 무게입니다」에서는 책을 정리하는 일이 곧 삶의 무게를 돌아보는 행위로 이어진다.

박종욱 시인은 부산 출신으로 기자 생활을 했으며 현재 경기 파주에 거주하고 있다. 시인은 책 소개 글에서 “다만 박제되지 않는 꿈, 오래 기억하고자 했다”고 적었다.

『동강』은 거창한 위로나 극적인 고백 대신, 오래 살아낸 사람이 조용히 건네는 문장으로 독자를 붙든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강가를 따라 걷듯 누군가의 지나온 시간을 함께 건너는 기분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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