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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성’이라는 교실의 규율을 거꾸로 관찰하다, 『플랑크톤 드림』(티토 라자르시 무코파디예이, 쌤스토리)
미국 특수교육 시스템 안에서 관리 대상으로 취급된 자폐 당사자가 풍자와 사유의 문장으로 교육과 사회의 편견을 정면 비튼 자전적 에세이
출판사 제공
『플랑크톤 드림』은 자폐 당사자의 성장담이나 감동 서사로 쉽게 정리될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이 겨누는 것은 개인의 결핍이 아니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명분 아래 타인을 분류하고 통제해 온 교육 시스템의 오만이다. 인도에서 이미 10학년 과정을 마친 티토는 미국의 특수교육 교실에서 다시 ‘말 못 하는 자폐아’로 취급되었고, 그를 기다린 것은 지적 자극이 아니라 유아용 퍼즐과 행동 교정의 시선이었다. 그러나 티토는 그 자리에서 순응하는 대신, 자신을 관찰하는 교사들과 제도를 거꾸로 관찰하는 쪽을 택했다.
책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바로 그 전복의 방식이다. 티토는 자신을 “경험주의 연구자”로 상정하고, 교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장면을 하나의 사회적 실험처럼 기록한다. 머리를 만지는 습관을 분류하고, 교사의 반응을 분석하고, ‘적절한 행동’이라는 규범이 얼마나 위선적으로 작동하는지 집요하게 해부한다. 이때 그의 문장은 피해자의 호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특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길들이기와 정상성의 규범을 유머와 냉소, 철학적 비틀기로 되돌려준다. 그리하여 교실은 더 이상 보호의 공간이 아니라, 누가 누구를 해석하고 규정할 권리를 쥐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권력의 현장이 된다.
티토의 시선은 특히 사회적 규범을 바라볼 때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는 책 냄새를 맡는 자유를 예로 들며, 정작 사회라는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 갇힌 쪽이 누구인지를 되묻는다. 사람들은 그의 반복과 몰입을 쉽게 ‘강박’이라 이름 붙이지만, 티토는 그것이 세계를 더 미세하게 탐구하는 감각의 방식이라고 응수한다. 학점 체계를 두고 알파벳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비꼬는 대목, 사회적 기술이라는 이름 아래 순응을 강요하는 태도를 조롱하는 대목은 통쾌하면서도 불편하다. 이 책은 자폐를 해명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비장애 중심 사회가 무엇을 정상이라 부르며 무엇을 배제해 왔는지 폭로하는 편에 선다.
그래서 『플랑크톤 드림』은 교육 에세이인 동시에 사회비평으로 읽힌다. 특수교육 교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그 안에서 무너지는 것은 특정 제도만이 아니다. 타인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타인의 지성, 감각, 침묵, 속도를 함부로 재단해 온 익숙한 태도 전반이 이 책 앞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번역자 김성남은 이 책을 통해 당연하게 여겨온 규칙과 통념에 질문을 던지는 즐거움을 발견하길 바란다고 했는데, 실제로 티토의 문장은 독자를 안심시키기보다 계속 흔든다. 자유란 무엇인가, 소통이란 무엇인가, 교육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는가. 『플랑크톤 드림』은 그 질문들을 교실 한가운데에 다시 세워두고, 오래 유지되어 온 ‘정상성’의 권위를 우아하게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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