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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 삶, 『들리지 않지만 사는 데 괜찮습니다』 (이금자, 슬로디미디어)

청각을 잃은 이후의 삶을 기록하며 장애와 존엄, 소통의 조건을 드러낸 에세이

장세환2026년 4월 14일 오전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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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지만 사는데 괜찮습니다.jpg출판사 제공

어린 시절 한 번의 질병은 삶의 조건을 바꿔 놓는다. 『들리지 않지만 사는 데 괜찮습니다』는 뇌수막염 이후 청각을 잃은 저자의 경험을 따라가며, ‘듣지 못하는 삶’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풀어낸다.

책은 장애를 선언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대신 소리가 사라진 이후 벌어지는 일상의 균열을 차례로 보여준다. 친구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놀이에서 밀려나는 순간, 학교에서 점점 멀어지는 시간, 그리고 가족 안에서도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이 쌓이는 과정이 이어진다. 소리의 부재는 곧 정보의 부재로 이어지고, 이는 관계의 단절로 확장된다.

이후의 서사는 다시 배우는 시간으로 넘어간다. 저자는 말을 익히고, 사회에 들어가고, 자신의 방식으로 일을 만들어간다. 바느질과 퀼트 작업은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등장한다. 소리에 의존하지 않는 작업을 통해 일상은 다시 구성되고, 삶의 리듬도 새롭게 만들어진다.

책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적 시선으로 확장된다. 청각장애인을 둘러싼 오해, 수어에 대한 인식, 정보 접근의 차이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들리지 않음’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소통 구조의 문제라는 점이 반복된다.

동시에 저자는 장애를 단순한 결핍으로만 두지 않는다. 시각과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손과 눈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또 다른 언어로 자리 잡는다.

소리가 닿지 않는 자리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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