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상세
틈에서 피어나는 생의 감각, 『세월을 넘어온 것들에 틈이 있다』 (김란희, 천년의시작)
내면과 존재를 잇는 생명적 시선, 조용히 스며드는 시적 사유
출판사 제공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종종 균열을 결핍으로 여긴다. 그러나 김란희의 시집 『세월을 넘어온 것들에 틈이 있다』는 그 틈을 생의 조건이자 가능성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무너진 자리, 갈라진 표면, 지나온 시간의 흔적 속에서 오히려 생명은 자라고 관계는 이어진다.
이 시집은 내면의 세계를 깊이 응시하는 동시에, 존재와 세계의 연결 방식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시인은 대상과 자아를 분리하지 않고 서로 스며드는 관계로 포착한다. 인드라망의 사유처럼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인식은 시 전반에 잔잔하게 흐르며, 조화롭고 온화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격렬한 선언 대신, 작은 체험과 기억을 통해 자아의 윤곽을 드러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정서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모성적 그리움과 귀소의 감각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향한 움직임으로 확장된다. 시인은 과거의 장면과 미시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을 되짚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지닌 근원적 외로움과 연민을 담담하게 끌어올린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내면 속에서 겹치고 되돌아오며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표제작 「세월을 넘어온 것들에 틈이 있다」는 이러한 시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틈새는 생존이다 / 틈새는 마음이다 / 틈새는 인연을 만든다”라는 구절은 균열을 통해 생이 이어진다는 시인의 시선을 압축한다. 허물어진 자리에서 오히려 자신을 발견하는 장면은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감각이다.
김란희의 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기보다, 존재를 둘러싼 질문을 조용히 건넨다. 삶의 균열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을 들여다보려는 태도, 그리고 그 틈에서 다시 관계와 의미를 길어 올리는 시선이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시집은 결국 묻는다. 우리가 외면해온 틈은 정말 결핍이었는지, 아니면 아직 이해하지 못한 또 다른 시작이었는지.
관련 기사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