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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길 위에서 건져 올린 시대의 감각, 『사과가 있는 토요일』 (강시현, 천년의시작)

일상의 속도와 상처, 존재의 질문을 사과라는 이미지에 겹쳐 쓴 시집

장세환2026년 3월 17일 오후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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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있는 토요일.jpg출판사 제공

강시현 시인의 새 시집 『사과가 있는 토요일』이 천년의시작에서 출간됐다. 『리토피아』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태양의 외눈』, 『대서 즈음』을 펴낸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붙든 것은 화려한 관념보다 현실의 표면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각들이다. 개인의 체험과 시대의 풍경이 맞물리는 자리에서, 시인은 일상어를 빌려 상처와 불안, 신앙과 존재의 문제를 밀도 있게 밀어 올린다.

표제작 「사과가 있는 토요일」은 이번 시집의 성격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아이작 뉴턴의 떨어지는 사과와 / 스티브 잡스의 한입 베문 사과와 / 시위대에 터진 사과탄의 깊은 흡입과 깨진 앞니”라는 구절은 하나의 사과를 과학과 자본, 폭력과 시대의 기억으로 갈라 놓는다. 시는 사소한 이동 경로를 따라가다가도 어느 순간 사회의 먼지와 소음, 속도전에 휩쓸린 삶의 민낯을 드러낸다. “오늘은 가능성의 사과가 있는지 궁금한 토요일이니까요”라는 마지막 문장은 이 세계가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았음을 낮고 묵직하게 남긴다.

시집 전반에는 현실을 정면으로 건너는 시선이 배어 있다. 강시현의 시는 감정을 흘려보내는 데 머물지 않고, 삶의 균열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오래 들여다본다. 그래서 그의 시는 낭만적 위안보다 날것의 감각에 가깝다. 「행복슈퍼 아이스크림」, 「검정 치마 비둘기」, 「플라스틱 애인」 같은 제목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시인은 익숙한 사물과 풍경을 불러와 그 안에 묵은 고통과 질문을 눌러 담는다.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언어들이 그의 시 안에서는 전혀 다른 무게를 얻는다.

출판사는 강시현의 시 세계를 개인적 경험과 시대적 상황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형성된 독특한 리얼리즘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이 시집은 내면의 상처를 응시하면서도 끝내 자기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가족과 신앙, 몸과 기억, 지역의 정서와 사회적 감각이 뒤엉키며 한 사람의 생과 한 시대의 표정이 함께 떠오른다. 해설을 쓴 김재홍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이 시집의 ‘사과’는 과일이면서 사죄이고, 용서이며, 세계를 다시 묻게 하는 근원적 이미지로 작동한다.

『사과가 있는 토요일』은 소란한 시대를 향해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신 골목과 사거리, 병원과 성당, 가게와 신호등 사이를 지나며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감각 하나를 다시 집어 올린다. 그 조용한 문장들이야말로 오늘의 현실을 오래 붙드는 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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