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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로 가야겠다』 신간 시(도종환, 열림원)

폭풍의 시절을 건너, 언어로 지은 ‘고요의 집’

장세환2025년 10월 29일 오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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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로 가야겠다.jpg출판사 제공

한국 서정시의 거장 도종환 시인이 신작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로 돌아왔다. 정치와 시대의 소음을 통과한 뒤에야 더 부드러워진 언어로, 그는 일상과 자연, 상처와 회복을 다시 말한다. “바람이 멈추었다 / 고요로 가야겠다”는 선언처럼, 이번 시집은 도피가 아닌 회복의 방향을 가리킨다. 곽재구·나희덕 시인은 “돌아온 도종환의 고요”에서 시대와 인간을 함께 품어온 그의 시적 윤리를 읽어낸다.

시집은 「이월」·「고요」·「달팽이」·「슬픔을 문지르다」·「사랑해요」·「당신의 동쪽」·「손」·「끝」까지 여덟 개의 ‘방’으로 구성됐다. 흰 페이지와 검은 페이지가 교차하는 지면 설계는 읽기의 속도를 늦추며, 문장과 침묵을 함께 체험하게 한다. 척박한 터에서 피는 들꽃, 연둣빛으로 올라서는 가지, 귀뚜라미의 다리 하나까지—시인의 시선은 작은 것의 숨을 오래 붙든다. “새로운 것은 유연하다”는 구절처럼, 상처를 밀고 나온 부드러움이 이번 시집의 장력이다.

몸의 감각으로 영혼의 진실을 더듬는 대목도 깊다. “슬픔을 문지르면 분노가 덜 아프다”, “놓아주는 법을 배운다” 같은 문장은 의미 이전의 호흡으로 다가온다. 상실을 긍정으로 밝히지 않고, 젖은 낙관으로 건너가는 태도 역시 눈에 띈다. “원망하지 마라 사람을”이라는 짧은 문장처럼, 분노의 언어를 절제한 끝에 남는 것은 관계를 다시 잇는 다정함이다. 시를 오래 써온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간결함이 여기 있다.

이번 시집은 떠남이 아닌 귀환의 기록이다. 계절과 꽃, 바람과 파도, 저녁과 새벽 사이에서 화자는 “희망의 편에 서겠다”고 말한다. 어둠의 길이만큼 별의 밝기를 믿는 마음, 그것이 도종환식 ‘고요’의 윤리다. 고요는 침묵이 아니라 이해이며, 세상 속에서 자신을 다시 세우는 일—그가 언어로 짓는 마음의 집이다.

마지막 한 줄: 소음 속에서 길 잃었다면, 고요로 가야 한다—거기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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