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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괴수라는 이름 뒤의 인간 허균, 『허균의 편지』 (허균, 교유서가)
『허균의 편지』는 1596년부터 1613년까지 허균이 남긴 편지를 완역해, 혁명가라는 통념 너머의 인간적 면모와 문학적 세계를 복원한다.

출판사 제공
우리가 아는 허균은 얼마나 허균 자신에 가까울까. 교유서가에서 출간된 『허균의 편지』는 조선 최고의 이단아이자 ‘역적 괴수’로 역사에 박제된 허균을 편지의 목소리로 다시 읽는 책이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이 남긴 편지를 완역하고, 오랜 기간 허균을 연구해온 울산대 노경희 교수의 치밀한 고증을 거쳤다.
이 책은 1596년부터 1613년까지의 편지를 따라간다. 독자는 격동적이었던 허균의 삶과 사유를 편지의 흐름 속에서 실감하게 된다. 편지 속 허균은 거침없는 혁명가의 모습만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인과 마음을 준 벗을 향한 그리움을 숨김없이 토로하고, 주위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며, 때로는 세속의 출세와 이익에 초탈한 듯한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목차는 편지의 시간표처럼 펼쳐진다. 정구, 임수정, 임현,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 한호, 류성룡, 이항복, 이매창, 이달, 권필 등 수많은 이름이 등장한다. 허균은 관료와 문인, 승려와 예인, 벗과 가족을 향해 글을 보냈다. 편지는 공적인 문서와 사적인 고백 사이에 놓인 장르다. 그 안에서 허균은 시대의 제도와 사람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말과 처지를 남겼다.
이 책이 중요한 까닭은 허균에 대한 통념을 다시 검토하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는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의견이 적대적 인물의 전언에만 등장할 뿐 직접 근거가 남아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반역을 도모했는가 하는 문제 역시 직접 물증 없이 주변 인물들의 증언만으로 사형이 결정되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훗날 반드시 이론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까지 수록되어 있다. 익숙한 허균상은 신빙성 있는 1차 자료보다 전언과 야사의 반복 속에서 굳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편지는 그런 굳은 이미지를 흔든다. 허균은 불교와 도가 사상에 관심을 보였지만, 동시에 유가 전통과 사대부적 소양을 중요하게 여긴 인물이기도 했다. 〈호민론〉 역시 민중에 대한 혁명적 호감이라기보다 지배층의 안정적 집권을 위해 민의 불만을 조기에 무마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을 필요가 있다는 최근 연구의 지적도 소개된다.
『허균의 편지』는 허균을 영웅이나 악인 중 하나로 고정하지 않는다. 조선 중기 사대부 문화와 명대 강남 문인 문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문학적 개성을 형성한 관료 문인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는 유명한 선언도 한 개인의 독창성만이 아니라 더 넓은 문화적 동향 속에서 읽힌다. 편지는 소문이 만든 허균이 아니라, 글로 남은 허균을 만나게 하는 가장 가까운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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