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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실려 끝내 하얗게 세어가는 마음”, 『억새』 출간(김광수, 현북스)
풍경 속 사람들의 슬픔과 그리움…삶의 고독을 노래처럼 길어 올린 첫 시집
출판사 제공
가을 들녘의 억새는 왜 저토록 오래 흔들리는 걸까. 누군가를 부르는 듯 고개 숙인 채 바람 속에서 하얗게 세어가는 풍경. 김광수 시인의 첫 시집 『억새』는 바로 그 흔들림 속에서 시작된다.
현북스가 출간한 『억새』는 꽃과 나무, 물과 달, 산과 들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 안에 숨은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을 길어 올린 시집이다. 전철 안과 사무실, 장례식과 시장통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을 하나의 풍경으로 바라보며, 그 속에 남아 있는 감정의 흔적을 섬세하게 더듬는다.
시집의 문을 여는 서시 「억새」는 이번 시집 전체의 정서를 압축한다.
“그 무엇을 향한
그리움 있어
저토록 무수히
고개 숙이며
목 놓아 외쳐
부르는 걸까”
이어 “마침내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 / 바람에 실리어 / 날릴 때까지”라는 구절은 시간 속에서 늙어가는 인간의 그리움까지 포개어 놓는다.
김광수 시인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하고 양화중학교, 경기여고, 세종과학고, 서울과학고 등에서 영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오랜 시간 교육 현장에 머물렀던 시인은 이번 첫 시집에서 화려한 수사보다 오래 가슴속에 남아 있던 풍경과 사람들을 조용히 불러낸다.
특히 시집 3부에 실린 「창근이」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시장통을 떠돌며 늘 웃고 다니던 한 남자의 삶과 죽음을 그린 이 시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에 가까운 울림을 전한다.
“창근아 창근아
아이들이 이름 불러대어도
뭐가 그리 좋은지
창근이, 그저 웃기만”
이어 “시장 좌판 옆에 창근이 잠들어 / 영영 일어나지 아니했는데”라는 대목에서는 소박한 한 인간의 삶이 조용한 비애로 스며든다. 마지막의 “우리 엄마 저고리 섶 마알간 눈물 / 그립네 / 자꾸 / 그립네”라는 문장은 오래 눌러 담았던 그리움을 터뜨리듯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시집 전반에는 자연 풍경과 인간 감정이 겹쳐 흐른다. 「단풍」에서는 “산물은 꼭대기에서 / 서서히 달리기 시작하더니 / 오늘 / 마침내 호수 속으로 / 소리 없이 가만히 / 뛰어들었네”라며 계절의 움직임을 생의 침잠처럼 묘사한다.
또 다른 작품 「산정에서」에서는 “흩어졌던 바람 / 어느새 다시 그리움 되어”라는 구절로 잊힌 줄 알았던 감정이 되돌아오는 순간을 붙잡는다. 거창한 사건보다 문득 밀려오는 기억과 마음의 떨림에 집중하는 시선이 특징적이다.
출판사는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풍경 속에는 삶의 고독과 슬픔이 숨어 있다”며 “김광수 시인은 그 풍경 속 사람들을 시 속으로 데려와 잊고 있던 감정과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고 설명했다.
추천사를 쓴 박응천 교수는 김광수 시인을 두고 “다섯 감각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시적 감수성으로 감지해내는 언어의 예술가”라고 평했다.
『억새』는 요란하게 감정을 외치는 시집이 아니다. 대신 오래된 사진처럼 천천히 번져오는 슬픔과 그리움을 담는다. 지나간 풍경을 다시 꺼내 바라보는 일,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갈 힘을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이번 시집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위로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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