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상세
벼락을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들의 시, 『벼락 꺼내 오기』 출간(이연자, 시인동네)
“벼락을 맞고도 죽지 않는 대추나무”…상처와 기억을 길어 올린 두 번째 시집
출판사 제공
전남 장흥의 흙냄새와 강물, 나무와 새, 오래된 상처의 기억이 한 권의 시집으로 묶였다. 2019년 《문예바다》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연자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벼락 꺼내 오기』를 펴냈다. 시인동네는 이번 시집을 시인동네 시인선 276번으로 출간했다고 밝혔다.
이번 시집에는 「새가슴이 된 이야기」, 「물새와 나는」, 「별의 이름」, 「백 년 후 봄」 등 모두 60여 편의 시가 실렸다. 자연과 인간, 기억과 시간의 흐름을 겹쳐 놓는 특유의 시선이 특징이다. 특히 나무와 돌, 강물과 씨앗 같은 자연의 이미지들이 인간의 상처와 생의 흔적으로 이어지며 깊은 울림을 만든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벼락 꺼내 오기」는 이번 시집의 중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은 “벼락을 맞고도 죽지 않는 대추나무 / 다시 심장을 뛰게 할 방법이 있을까”라고 묻는다. 벼락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삶을 뒤흔든 고통과 충격의 은유처럼 읽힌다. 그러나 시 속 나무는 완전히 쓰러지지 않는다. 상처를 품은 채 다시 살아 움직일 방법을 찾는다.
이연자의 시는 화려한 수사보다 감각의 밀도를 통해 독자를 끌어당긴다. 「새가슴이 된 이야기」에서는 “살 만하니까 병이 왔다고 / 살 만하니까 마른기침이 / 피를 뱉었다고”라는 문장으로 삶과 병, 가족의 시간을 동시에 끌어안는다. 이어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 큰일이라고 / 기적이라고 / 붉은 새가 한참을 울고 갑니다”라는 대목은 가족을 향한 애틋한 시선을 오래 남긴다.
강과 새를 바라보는 장면 역시 단순한 풍경 묘사에 머물지 않는다. 「물새와 나는」에서 시인은 “새와 나는 아주 느린 강물이 처음이라는 듯이 /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라고 적는다. 얼음이 녹고 피라미가 몸을 뒤집는 강가 풍경 속에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의 몸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시는 설명보다 감각으로 먼저 독자에게 닿는다.
이번 시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기억’이다. 특히 아버지와 고향,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이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별의 이름」에서는 “각혈을 쏟고 흙으로 들어간 아버지 / 통증같이 홀로 떠 있는 북극성”이라는 문장을 통해 가족의 기억을 우주적 고독으로 확장한다.
문학평론가 신상조는 해설에서 이연자의 시를 “감응과 지각 사이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무의식적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스며드는 감각,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들이 시 안에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인은 산문에서 양주의 밭을 가꾸는 시간을 “시를 쓰는 일과 같다”고 표현한다. “나는 여전히 나무를 모르고, 시를 모른다. 모르니까 이 김새는 일에 나는 몰두하고 싶은 것이다”라는 문장은 시를 향한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다. 흙과 바람, 풀벌레와 물소리가 그의 내적 풍경이 되어 다시 시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연자는 첫 시집 『세 개의 심장이 뛰는 연못』 이후 여수해양문학상과 포항소재문학상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시세계를 꾸준히 확장해 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자연의 언어와 인간의 기억을 겹쳐 놓으며, 상처 속에서도 다시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의 시간을 조용히 끌어올린다.
벼락은 지나가도 흔적은 남는다. 『벼락 꺼내 오기』는 바로 그 흔적 속에서 다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시들의 기록이다.
관련 기사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