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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듯 쓰고, 사라지듯 남기는 문장들 『지나가기 혹은 영원히 남아 있기』 신간 (강보원 | 민음사)
시를 쓰기 전과 후, 문학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며 남긴 나그네의 사유 기록
출판사 제공
하루를 살아내는 일조차 버거운 와중에, 어떤 말은 굳이 남겨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어떤 말은 그냥 지나가도 되는가. 『지나가기 혹은 영원히 남아 있기』는 바로 이 질문 위에서 시작되는 책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강보원은 이 책에서 자신의 시간을 세 구간으로 나눈다. 첫 시집 출간 이전, 첫 시집 출간 무렵, 그리고 시집 출간 이후. 그러나 이 삼분법은 연대기의 정리라기보다, 문학을 바라보는 태도의 이동에 가깝다.
이 책은 명확한 결론으로 독자를 데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옆길로 새고, 다시 돌아오고, 이내 또 다른 생각으로 흘러간다. 문학과 철학, 영화와 음악, 이센스와 김심야의 가사를 경유하는 글의 흐름은 산책에 가깝다. 목적지가 분명하기보다는, 걷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듯한 태도. 그래서 이 책은 에세이라기보다 ‘나그네의 말하기’라는 소개가 더 어울린다.
강보원의 문장은 독자를 붙들어 두기보다, 기꺼이 놓아준다. 책을 읽다 보면 문장 중간에서 멈추게 되고, 문장을 떠나 자신의 기억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러다 다시 돌아와 읽기를 이어간다. 『지나가기 혹은 영원히 남아 있기』는 그런 식으로 읽히는 책이다. 글이 독자를 소유하지 않고, 잠시 동행하다가 헤어지는 방식.
책의 초반부에서 강보원은 시를 쓰겠다고 결심하던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본다. “아무리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시집 한 권 정도는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의 오해와 착각. 열심히 하면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목표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만큼의 무게와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고백은 솔직하고 아프다. 문학은 노력의 총량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삶을 너무 가볍게 여겼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담담하게 적힌다.
이 책에서 자주 반복되는 정서는 ‘부질없음’이다. 생각은 한참 뻗어나가다가도, 결국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그 부질없음은 허무와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강보원은 부질없음을 견디는 태도야말로 문학의 조건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묻는다. 왜 글을 쓰는지 알 수 없고, 글이 무엇을 바꾸는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일.
삶에 대한 고민 역시 과장 없이 서술된다. 인생의 보폭과 맞지 않는 속도, 끝없이 밀려드는 할 일들, 하지 않은 것들이 만기가 되어 목덜미를 잡는 감각.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삶, 하고 나면 조금은 나아지지만 또 다른 일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 이 반복의 피로는 많은 독자에게 낯설지 않다. 강보원은 이 감각을 분노나 자기계발의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고 말할 뿐이다. 억울하지만 해소되지 않는 감정, 그럼에도 계속 살아야 하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책의 중반부로 가면 문학론이 더욱 또렷해진다. 강보원은 시의 신비를 탈구조나 무구조에서 찾는 담론에 대해 피로를 느낀다고 말한다. 대신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이해하려는 시도 이후에도 끝내 남아 있는 잔여다. 존 케이지의 글에서 느낀 동질감, 좋은 시가 주는 “이렇게 써도 된다”, “이렇게 생각해도 된다”는 안도감. 이는 허락이나 승인이라기보다, 어딘가에 이미 가고 있던 동료가 있다는 느낌이다. 문학이 주는 가장 큰 위안은, 지금 여기에서 찾지 못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강보원이 말하는 ‘신비’는 이해를 거부하는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이해하려는 시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부분에 대한 관심이다. 질서를 이해해도 여전히 남아 있는 어떤 것. 그는 그 잔여가 문학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 태도는 시를 설명하려 들지 않고, 시가 허용하는 여백 속에 머무는 그의 글쓰기 방식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협업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도 조용히 등장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무언가를 할 때, 끝없는 회의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결국 각자가 가진 최소한의 것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보원은 협업을 ‘입장을 고수하는 일’보다 ‘입장을 포기하는 일’에 가깝게 정의한다. 포기하고 나면,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경험. 인생은 잘못된 방식으로도 어떻게든 돌아간다는 체념 섞인 확신은, 지나온 시간의 축적에서 나온 문장처럼 읽힌다.
『지나가기 혹은 영원히 남아 있기』는 문학의 효용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심하고, 회의하고, 그럼에도 계속 쓰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책은 문학이 무엇을 남기는지를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말은 그냥 지나가도 괜찮고, 어떤 말은 예상치 못하게 남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정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감각이 아니라, 함께 걸었다는 기억에 가깝다. 걷는 도중 만난 낯선 이가 건넨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듯, 강보원의 문장은 읽고 나서 곧바로 요약되지 않는다. 대신 일상 어딘가에서 다시 떠오른다.
『지나가기 혹은 영원히 남아 있기』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글쓰기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에게도 유효한 책이다. 무엇이 지나가고 무엇이 남는지는 결국 알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알 수 없음 속에서도 계속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태도를 이 책은 특별한 선언 없이 보여준다.
강보원의 이 산문은 묻는다. 지금 당신이 붙잡고 있는 말은, 지나가도 되는가. 아니면 뜻밖의 방식으로 오래 남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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