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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라는 균열 위에 선 기억의 서사, 『지금, 그리고 그때』(저메이카 킨케이드, 문학동네)
사랑과 분노, 가족과 기억이 교차하는 자전적 서사 속에서 ‘지금’과 ‘그때’의 의미를 다시 묻다
출판사 제공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지금, 그리고 그때』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지금’과 ‘그때’가 뒤섞이며 끊임없이 서로를 침범하는, 시간의 균열 자체를 서사로 삼는다. 현재는 과거를 재구성하고, 과거는 현재를 잠식한다. 그 결과 독자는 한 인물의 삶을 직선적으로 이해하기보다, 감정의 층위가 겹겹이 쌓인 상태로 마주하게 된다.
소설의 중심에는 미시즈 스위트가 있다. 앤티가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서 점차 균열을 경험한다. 주방 옆 작은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그의 행위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기 삶을 다시 조립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기억은 사실을 재현하기보다 감정의 진실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과거는 더 이상 과거로 머무르지 않는다.
이 작품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감정의 방향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보호의 감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움은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그 가장 가까운 변형으로 제시된다. 가족이라는 가장 밀착된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균열은, 타인과의 갈등보다 더 깊고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특히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감정은 애정과 혐오, 책임과 회피가 뒤엉킨 채 서술되며, 독자에게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킨케이드는 이 사적인 서사를 신화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사물, 일상의 장면들이 신화적 상징으로 변환되면서, 개인의 경험은 보편적 서사로 확장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감정의 밀도다. 평범한 일상—빨래, 육아, 식탁—은 신화적 긴장 속으로 끌어올려지고,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이 드러난다.
특히 이 소설에서 반복되는 ‘지금’이라는 감각은 단순한 현재 시점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붙잡히지 않으며, 언제나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상태로 묘사된다. 삶은 언제나 지금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지금’은 결코 완전히 소유되지 않는다. 이 불완전성은 좌절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지속시키는 조건으로 제시된다.
『지금, 그리고 그때』는 기억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려는 한 여성의 기록이자, 동시에 가족이라는 구조가 개인에게 어떤 균열을 남기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감정을 미화하지 않고, 관계를 봉합하지 않으며, 시간마저 안정된 틀로 두지 않는 이 소설은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 삶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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