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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는 이름 뒤에 가려졌던 한 사람의 생애, 『당신이 모르는 동안,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송영자, 아인)

92세 어머니 한순희 여사의 삶을 딸 송영자 작가가 엮어낸 문학에세이가 가족과 노년, 기억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장세환2026년 4월 22일 오전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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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동안,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jpg출판사 제공

아인에서 펴낸 『당신이 모르는 동안,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는 92세 어머니 한순희 여사가 스무 권이 넘는 노트에 써온 삶의 기록을 딸 송영자 작가가 엮어낸 문학에세이였다.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여성의 생애를 따라가며, 가족 안에서 익숙하게 불려온 ‘어머니’라는 존재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 책이었다.

책은 거창한 영웅담보다 삶의 결을 붙드는 방식으로 읽혔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충분히 배우지 못했던 어린 시절, 마흔이 넘어 홀로 되어 여섯 아이를 키워낸 시간, 아흔을 넘어 다시 자신을 발견해가는 노년의 순간들이 담담하게 이어졌다. 상실과 사랑, 가난과 책임, 후회와 품위 같은 말들이 이 책에서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낸 시간의 표정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중심에는 기록이 있었다. 감정의 기복이 커지던 시기, 딸이 건넨 노트 한 권에서 시작된 어머니의 글쓰기는 어느새 스무 권이 넘는 세월의 증언으로 쌓였다. 송영자 작가는 어머니를 온전히 이해한 뒤에야 쓰겠다고 미뤄왔지만, 결국 쓰는 동안에야 비로소 이해에 가까워졌다고 고백했다. 그 고백은 이 책을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딸이 어머니에게 다시 말을 거는 늦은 기록으로 만들었다.

목차 또한 인상적이었다. ‘사라지는 것들’, ‘남아있는 마음들’, ‘다시 피어나는 순간들’이라는 3부 구성은 한 사람의 삶을 과거의 상처에만 묶어두지 않았다. 늦은 후회와 외로움, 소소한 행복과 품위, 그리고 황혼의 로맨스까지 함께 담아내며 노년 역시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시간임을 보여주었다.

『당신이 모르는 동안,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는 결국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오래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 에세이였다. 가족이라는 호칭 뒤에 지워졌던 한 사람의 생애를 다시 읽게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질문을 건네는 신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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