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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웃음, 『명태가 웃는다』(양상보, 작가)

일상의 사물로 길어 올린 존재의 중심과 시조의 새로운 긴장

장세환2026년 4월 22일 오전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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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가 웃는다.jpg출판사 제공

시조는 오래된 형식이다. 그러나 『명태가 웃는다』는 그 형식이 여전히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양상보 시인의 두 번째 시조집은 전통의 틀 안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틀을 느슨하게 흔들며,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장면을 통해 존재의 중심을 새롭게 드러낸다.

이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낮은 곳의 시선’이다. 중심은 드러나지 않고, 주변부에 머문다. 그러나 그 주변이야말로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반복해서 환기한다. 대표작 「명태가 웃는다」는 그러한 시선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징용으로 끌려가듯 난바다 끌고 와서
덕장도 동장군도 겹겹이 지켜 섰다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줄줄이 매달렸다
찌부러진 지느러미 이제 훌훌 털어내고
저울대도 필요 없이 좌판에서 맞은 해방
시장통 봄빛 나들이 꿰인 입이 벌어졌다

이 시에서 명태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다. 산업과 노동, 생존의 시간을 견딘 존재가 봄빛 속에서 ‘웃는다’. 해학은 있지만 가볍지 않다. 오히려 삶의 무게를 통과한 뒤에야 가능한 웃음이다.

양상보의 시는 이런 방식으로 사물을 변환한다.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중심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고, 모기는 거대한 존재와 맞서는 작은 생명의 전략이 된다. 작은 것에서 출발한 시선이 세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서정의 긴장’이다. 이 시집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대신 장면을 배치하고, 사물을 놓아두며, 독자가 그 사이를 읽도록 만든다.

부석사 절 마당을 부처가 쓸고 있다
흩날리다 남겨지는 공양 같은 낙엽 더미
뜬 돌은
수행 중이다
절집을 품어가며

이 짧은 시에서 ‘수행’은 인간이 아닌 ‘돌’의 몫이 된다. 시선이 이동하는 순간, 의미의 중심도 함께 이동한다. 이러한 전복은 양상보 시의 핵심 미학이다.

형식적으로도 시인은 시조의 정형성을 고집하지 않는다. 리듬은 유지하되, 문장과 이미지의 흐름을 통해 현대적 감각을 확보한다. 그 결과, 이 시집은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는 독특한 균형을 만들어낸다.

결국 『명태가 웃는다』는 거창한 세계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것, 낮은 것, 보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해 삶의 중심을 되짚는다.

웃음은 여기서 가벼운 감정이 아니다.
견디고 난 뒤에야 비로소 가능한, 가장 단단한 형태의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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