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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의 흔적을 시로 남기다, 『붓 가는 대로』 (송영달, 책과함께)
80여 년 삶의 희로애락을 따라 흐르는 시와 산문의 기록
출판사 제공
오랜 시간을 살아낸 사람의 문장은 설명보다 온기로 다가온다. 한 사람의 인생이 켜켜이 쌓인 자리에서, 말보다 먼저 남는 것은 결국 감정의 결이다. 그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 나왔다.
『붓 가는 대로』는 정치학자이자 연구자였던 송영달 교수가 삶의 끝자락에서 정리한 시와 산문을 엮은 책이다. 학문과 연구의 길을 걸어온 저자가, 개인의 기억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며 또 다른 언어로 자신을 돌아본 결과물이다.
이 책은 크게 시와 산문 두 갈래로 나뉜다. 시에는 자연과 사람, 늙음과 이별, 사랑과 회한 같은 주제가 담담하게 흐른다. 화려한 수사 대신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문장들은 오랜 시간 축적된 감정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한다. 산문에서는 병상에서의 사유, 친구와의 관계, 삶을 지나오며 마주한 질문들이 보다 직접적인 문장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 책은 ‘기록한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둔다.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지나온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기는 태도가 중심을 이룬다. 개인의 기억이 곧 시대의 단면이 되는 지점에서, 독자는 한 사람의 생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비춰보게 된다.
엘리자베스 키스 연구자로 알려진 저자의 이력 또한 이 책의 배경으로 읽힌다. 타인의 시선으로 한국을 기록해온 작업과 달리, 이번에는 스스로의 삶을 향한 시선이 글의 중심에 놓인다. 바깥을 향하던 기록이 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붓 가는 대로』는 정제된 결론을 내리기보다, 살아낸 시간 자체를 하나의 언어로 남긴다. 늙음과 상실, 그리고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담담한 응시는 독자에게 조용한 여운을 남긴다.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처럼, 각자의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순간들이 저마다의 빛을 지니고 있음을 이 책은 차분히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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