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요란한 언어 없이도 마음을 건드리는 시가 있다. 『버려지는 시라도 괜찮다』는 그런 시들을 모은 책이다. 산길에서 마주친 꽃 한 송이, 장터가 지나간 뒤의 고요한 길, 평상에 누워 바라본 늦봄의 풍경처럼 가까운 장면에서 시는 시작된다.
이 시집의 중심에는 ‘삶의 결’이 놓여 있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두지 않고, 그 안에서 인간의 시간을 읽어낸다. 계절이 바뀌는 흐름과 사람의 시간이 겹쳐지며, 특별한 사건 없이도 삶이 축적되어 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유월의 풍경」은 이 시집의 정서를 잘 드러낸다.
“나도
바람도
노랑나비도
그저 그 자리를 맴돌고
늦봄은 그렇게
여름으로 천금의 걸음을 걸어갑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순간 속에서 시간은 조용히 흘러간다. 시인은 그 흐름을 붙잡기보다 그대로 바라본다.
가족에 대한 기억 역시 중요한 축을 이룬다. 호박떡을 사 들고 돌아오던 길, 꽃보다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순간 같은 장면들은 꾸미지 않은 문장으로 담긴다. 그래서 이 시집은 특별한 이야기보다 ‘살아온 시간의 기록’에 더 가깝다.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은 이 시집의 방향을 선명하게 한다.
“돌길에도 봄은 온다”
거칠고 단단한 길 위에서도 결국 계절은 바뀐다는 믿음이다. 시인은 삶을 설명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지나온 시간 속 장면들을 조용히 펼쳐 보인다.
이 시집은 화려한 언어나 기교보다 태도에 가깝다. 오래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며 남겨 둔 기록. 그래서 독자는 시를 읽는 동안 하나의 삶을 따라 걷는 느낌을 받는다.
『버려지는 시라도 괜찮다』는 묻지 않는다.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 곁에 늘 있었지만 지나쳐 왔던 순간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어쩌면 버려지는 것처럼 보였던 시간들이, 사실은 가장 오래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