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상세
자신을 밀어내며 끝내 닿으려는 자리, 『가끔만 생각하려고』 (박규현, 1984Books)
상실과 쓰기의 경계에서 건져 올린 고백의 문장들
출판사 제공
잊으려 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얼굴들이 있다.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순간에도, 마음 어딘가에서 계속 말을 거는 기억들. 『가끔만 생각하려고』는 그 기억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다시 불러내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책이다. 시인 박규현의 첫 산문집은 ‘덜 생각하려는 마음’과 ‘끝내 생각해버리는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기록이다.
이 책에서 쓰기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살아내기 위한 방식에 가깝다. 감정을 정리하거나 위로를 건네는 글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순간마다 다시 붙잡는 행위다.
“쓴다는 것, 견딜 수 없을 때마다 쓰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쓰는 자의 살갗을 뚫고 … 끄집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 문장은 이 책이 어떤 태도로 쓰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쓰는 일은 바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를 더 깊이 파고드는 과정이다.
박규현의 글은 상실을 중심에 두고 이어진다. 사라진 존재들, 지나간 시간, 놓쳐버린 순간들을 되짚으며, 그 감정이 현재의 삶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살핀다. 애도는 단순히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와 판단, 감각 전체를 흔드는 경험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들은 쉽게 흘러가지 않고, 중간중간 멈춰 서게 만든다.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자기 배반’이다. 시인은 자신을 지키기보다,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쪽을 선택한다. 익숙한 생각, 편안한 태도, 숨기고 싶은 감정까지 하나씩 뒤집어 본다.
“나는 나를 배반하는 동시에 나로부터 벗어난다.
일순간. 나는 내가 기꺼울 수 있다.”
이 고백은 고통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해방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자신을 부수는 행위가 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한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다.
책 전반에는 크고 극적인 사건보다,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친구를 떠올리는 장면, 몸의 감각, 계절의 변화 같은 것들이 하나씩 놓인다. 그 장면들은 거창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가끔만 생각하려고』는 읽는 이를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머무르게 한다. 불편한 감정과, 쉽게 정리되지 않는 기억들 곁에 잠시 서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각자의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생각을 줄이려 할수록, 우리는 결국 더 정확한 기억 하나를 붙잡게 된다.
관련 기사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