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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삶을 다시 일으키는 순간, 『카프네』 (아베 아키코, 이소담 옮김, 은행나무)
정리된 방과 따뜻한 음식 한 끼가 무너진 일상에 어떤 힘이 되는지 묻는 일본 소설
출판사 제공
삶이 무너지는 순간은 대개 거창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가까운 사람을 잃고, 익숙하던 일상이 더는 예전처럼 굴러가지 않는 데서 시작됐다.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쌓여가는 집안일과 끼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생활의 무게는 사람을 더 깊은 바닥으로 밀어 넣곤 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다시 일으키는 일은 때로 큰 위로의 말보다 정리된 방 한 칸, 제대로 차린 한 끼 식사에서 시작되기도 했다.
은행나무에서 출간된 『카프네』는 바로 그 생활의 힘을 정면으로 꺼내든 소설이다. 2025년 일본 서점대상 1위를 받은 이 작품은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일상이 망가진 가오루코가, 그의 유언을 계기로 전 여자친구 세쓰나를 찾아가면서 시작됐다. 까칠한 성격의 요리사 세쓰나가 몸담은 곳은 집안일에 짓눌린 사람들을 돕는 가사 대행 회사 ‘카프네’였다.
소설은 청소와 요리라는 가장 일상적인 노동을 통해 돌봄의 본질을 보여줬다. 가오루코와 세쓰나가 찾아가는 집들은 단순히 어질러진 공간이 아니었다. 독박 육아와 간병, 상실과 무기력 속에서 가까스로 버텨온 사람들의 시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거창한 구원을 약속하지 않았다. 대신 방을 치우고, 냉장고를 살피고, 따뜻한 음식을 내놓으며 무너진 생활의 질서를 조금씩 다시 세워 나갔다.
작품의 또 다른 힘은 음식 묘사에 있었다. 딸기 파르페와 주먹밥, 푸딩과 가토 쇼콜라 같은 음식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인물을 다시 현실로 붙드는 감각으로 기능했다.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살아가는 게 점점 더 괴로워져”라는 문장처럼, 먹는 일은 이 소설에서 생존과 존엄의 문제로 이어졌다. 잘 먹고 잘 지내는 일이야말로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최소한의 힘이라는 사실을 작품은 설득력 있게 밀어 올렸다.
후반부로 갈수록 남동생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이 드러나며 소설은 미스터리의 결을 더했다. 그러나 끝내 독자를 붙드는 것은 사건의 해답보다, 가족도 연인도 아닌 두 여성이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며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혈연과 제도 바깥에서도 사람은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남았다.
『카프네』는 결국 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소설이다. 깨끗한 방과 따뜻한 음식,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식탁에 앉는 일이 한 사람의 내일을 지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정하게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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