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어떤 날들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눈 덮인 마당에 홀로 남겨졌던 밤, 따뜻한 손길과 라면 한 그릇이 전부였던 저수지의 오후, 가늘게 울던 생명을 조심스레 들어 올리던 저녁. 『다시 쓰는 마음』은 그런 장면들을 “묵혀 두어도” 지워지지 않는 삶의 빛으로 붙잡아, 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버티고 살아왔는지 조용히 되짚는 기록이다. 저자 김미영은 밀양으로 귀촌해 자연과 함께 살며, 결국 ‘평범한 오늘’이 가장 큰 행복임을 알아가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 글쓰기는 과거를 미화하는 일이 아니다. 지나간 시간을 다시 바라보며,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책은 프롤로그 이후 3부 구성으로 흘러간다. 1부는 그날의 장면들로 되돌아가는 길이고, 2부는 “오늘, 이만하길 참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감각으로 현재를 붙드는 자리이며, 3부는 “그래, 다 잘 될거야”라는 작은 확신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다. 마지막에는 ‘다시 사랑으로’라는 에필로그가 기다린다. 제목 그대로, 마음을 다시 쓰는 일은 결국 삶을 다시 사랑하는 쪽으로 향한다.
이 책의 정서는 크고 거창한 깨달음보다, 작지만 오래 남는 온도에 가깝다. 눈 위로 내려앉은 달빛, 닭장 안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던 수탉, 별이 쏟아지던 밤하늘, 깡통에서 피어오르던 불빛 같은 기억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저자는 그 장면들을 ‘추억’으로만 두지 않고, 마음의 안식처로 다시 배치한다. 삶이 흐려질 때마다 꺼내 보는 작은 빛들, 그 빛이 있었기에 다시 걸어갈 수 있었다는 고백이 책 전체를 밀고 간다.
현실의 결도 놓치지 않는다. 정겨운 얼굴들이 요양원으로, 하늘나라로 떠나가는 시간 앞에서 버스에 오르며 “다 오셨지요?”를 확인할 때 울컥했던 마음, 장독대 옆 봉숭아꽃을 심으며 할머니의 손길이 내 일상으로 이어지는 감각, 몸이 아픈 생명과 함께 기적을 확인하던 순간 같은 장면들이 겹겹이 쌓이며 ‘오늘’의 무게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책의 위로는 감정 과잉이 아니라, 삶을 오래 살아낸 사람의 문장처럼 담담하게 온다. “완벽해져라”가 아니라 “기억 속 작은 빛을 다시 꺼내도 된다”는 방식의 위로다.
『다시 쓰는 마음』은 결국 묻는다. 내가 지나온 시간은 정말 사라졌나.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빛 아래에서 오늘의 나를 조용히 지탱해온 건 아닐까. 책을 덮는 순간, 독자는 자기 삶에도 ‘오래 묵혀 두어도 사라지지 않는’ 장면 하나쯤을 떠올리게 된다. 그 장면을 다시 쓰는 일은, 다시 살아갈 힘을 조심스레 손에 쥐는 일과 닮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