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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다듬어 시가 되다, 『앵두가 쥐여준 씨앗 한 되』 신간 출간 - (사윤수, 시인동네)
"배운 것이 슬픔이고 주워온 것도 슬픔", 비극을 견디는 언어의 힘
출판사 제공
"배운 것이 슬픔이고 기껏 주워온 것도 슬픔 한 포대."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2011년 등단한 사윤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앵두가 쥐여준 씨앗 한 되』가 시인동네 시인선 269권으로 출간됐다. 시인은 슬픔을 어디론가 치워버리고 싶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슬픔이 먼저 출근해 복무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총 48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실렸다. 「수국은 누구의 눈매라고 해야 할까」, 「없는 바깥」, 「검은 두부」, 「고요를 연주하다」, 「자작나무의 세계」 등 낯선 제목부터 독자의 시선을 붙든다. 시인이 각별히 아껴 쓰는 낯선 단어와 조어들이 눈에 띈다. 이는 비극적 세계를 견디고 좀 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 보려는 충동의 산물이다.
시 「없는 바깥」에서 시인은 묻는다. "저토록 크고 넓은 바깥은 누구를 안아주지?" 바깥은 언제나 나가야 하는 곳인 줄 알았고, 안 나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비용이 들 때가 있다. 한껏 치장을 하고 나가서는 들이받히고 넘어지고, 심장이 부서진다. "바깥의 바깥에 바깥이 쏟아진다 / 떼어낼 수, 없는 바깥 / 바꿀 수 없는 먼 길이 생겼다."
「검은 두부」는 더욱 기이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검은 두부가 온다 밤마다 온다." 사람들은 검은 두부를 베어 먹고 뜯어 먹고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도록 움켜쥔다. 검은 두부는 다음 날 아침이 올 때 사라진다. 누가 검은 두부를 만드는지, 어디서 자라는지 누구도 모를 일이다. 일상의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존재의 불안과 공허를 시인은 '검은 두부'라는 조어로 형상화한다.
「고요를 연주하다」에서는 추상적인 감정이 구체적인 움직임을 갖는다. "미지의 동굴에 눈먼 고요가 산다 / 한 마리 고요가 비늘을 반짝이며 천천히 헤엄쳐 온다." 고요는 하얀 건반 위로, 검은 반음들 사이로 실낱같이 상승했다가 자분자분 하강한다. 거기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 어린 고요 하나가 있다. 시간의 가루 속에 두 손을 묻으면 늙고 부드러운 고요가 가만히 만져진다.
시집의 백미는 「자작나무의 세계」다. "그 숲속을 걸어갈 때 자작자작 / 심장이 타들어 갔어." 자작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첨탑 사원이었고, 흰 종소리가 북방을 넘을 때 시인은 잔가지 많은 기도를 감싸 안았다. "눈 내리는 무덤 속에서 자작나무를 태워 밥을 짓자고 / 그래그래, 하얀 직립의 상류를 따라 / 당신 이마에 오래 입 맞출 때 / 자작자작 타오르는 자작나무의 세계." 사랑과 죽음, 경배와 열망이 한 편의 시 안에서 자작자작 타오른다.
영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시인은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이전에 『파온』, 『그리고, 라는 저녁 무렵』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인은 후기에서 "창가에 책걸상을 바짝 붙여놓았다. 저만치 야산과 동화천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고 쓴다. 천변에는 가끔 고라니 소리 울리고 새들이 날아와 논다. "에돌며 많은 것을 지불하고 겨우 얻은 한 뼘 창가"다. 그럼에도 세상의 비극을 생각하면 한 뼘조차 써늘하니, 그저 모든 것 시의 손길에 맡긴다.
해설을 쓴 시인 장정일은 사윤수를 "정통 시인"이라고 평가한다. 시인들은 세계를 기쁨이 충만한 향연으로 느끼기보다 비관적으로 보는 것에 더 기울어져 있고 거기에서 깊이를 찾는다. 사윤수는 「시가 너에게」에서 "눈물 석 동이가 너의 시"라고 말한다. 그에게 삶은 즐거움보다는 슬픔에 더 가까운 모양새를 하고 있다.
시인의 슬픔은 어디에 치워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슬픔의 황제"는 녹슬지도 썩지도 않는다. 장정일은 시인의 의태어와 의성어 사용에 주목한다. "명지바람 발밤발밤 지붕 위를 거니는 소리, 자드락비 떨어지는 소리, 감또개 똑또그르르 굴러 내리는 소리." 사윤수에게 의태어와 의성어는 추억의 육화이자 고향의 재현이다.
시인은 무욕과 인내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염원을 통해 잃어버린 혹은 도래할 미래상을 구현하려 한다. 시 쓰기 자체가 일상 언어에 대한 낯설게 하기이며, 시 자체가 조어일 수 있다. 비극적 세계 인식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려는 사윤수 시인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충동이 이 시집 전편에 흐른다.
시집 말미에는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한 구절이 인용된다. "삶이란 여럿이 모여 노는 노름판이다. 시간이 말한다. 패스! 사랑은 가진 돈을 몽땅 걸고 부들부들 떤다. 인간은 포커페이스를 짓고 있고, 죽음이 판돈을 몽땅 쓸어 담는다." 우리는 모두 이 노름판의 노름꾼들이다. 사윤수 시인은 그 판에서 슬픔을 다듬어 시로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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