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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의 세계에서 서로의 얼굴을 빌려오다, 『당신에게서 내 얼굴을 하나 가져갑니다』(서연우, 걷는사람)
사라짐과 탄생 사이를 걷는 “한 호흡”의 시
출판사 제공
서연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당신에게서 내 얼굴을 하나 가져갑니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146번으로 출간됐다. 시집은 ‘영원할 것 같은 삶’을 “잠시”라는 찰나로 끌어내리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의 명멸을 담백하게 기록한다. 첫 시 「잠시, 산다」에서 “나는 잠시 대지의 한 호흡으로, 있다”라고 읊조리는 문장은 시집 전체의 리듬이자 선언이다.
이번 시집에서 존재는 고정된 정답이 아니다. 해가 나면 사라질 첫눈처럼, 무너지는 물의 꽃무덤처럼, 사라지면서 동시에 태어나는 상태로 흔들린다. 시인은 오래 꺼지지 않는 불꽃 “야나르타쉬”를 응시하며 타도 다 타지 않는 존재의 속살을 묻고, 생존을 위해 시력을 포기한 물고기 “블라인드 케이브 카라신”을 통해 관계의 부조화를 날카롭게 비춘다. “너와 나 사이에서 우리는/있는 듯이 없고/없는 듯이 있다”는 구절은 가까울수록 더 멀어지는 틈을 정확히 짚는다.
시집의 시선은 사물과 동물, 몸과 노동의 현장까지 넓게 닿는다. 갑작스러운 고용의 균열을 담는 「사무처장이 잘렸다」, 일상 속 방황과 조급함을 건드리는 장면들이 이어지며, 존재의 문제는 사회적 실존으로 확장된다. 다만 시는 결론을 급히 내리지 않는다. 불안과 결핍을 해소하기보다, 그 상태를 ‘살아 있는 방식’으로 견디는 법을 더 오래 바라본다.
표제작 「캐리커처」에서 “당신에게서 내 얼굴을 하나 가져갑니다/원래의 얼굴은 두고 갈게요”라는 고백은 자아가 혼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응시와 시간의 마찰 속에서 갱신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시집이 ‘얼굴’을 말하는 방식은 결국 삶을 말하는 방식이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한 번쯤은 상대의 표정을 빌려 내 안의 낯선 부분을 비춰 보는 일.
『당신에게서 내 얼굴을 하나 가져갑니다』는 거창한 위로 대신, “잠시”라는 단위를 건네며 살아 있는 감각을 되살린다. 무관심처럼 보이는 세계의 균형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한 호흡을 건네며 다시 걸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시집의 바닥을 받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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