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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가족을 다시 배우다, 『치매 어머니의 일기장』 출간(석상혁, 지식공감)

치매의 시작부터 심화까지 8년 일기로 따라가는 한 가족의 기록

장세환2025년 12월 22일 오전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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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어머니의 일기장.jpg출판사 제공

지식공감이 석상혁의 에세이 『치매 어머니의 일기장』을 펴냈다. 현대 의학이 진행을 늦추는 데서 멈추는 치매는 한 가정의 일상을 단숨에 바꾸곤 한다. 이 책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치매를 겪기 전의 평범한 하루에서 증상이 깊어지는 과정까지 한 어머니가 직접 써 내려간 일기를 엮었다. 독자는 일상 기록이 서서히 흔들리며 감정의 파편으로 바뀌는 순간을 문장으로 마주한다. 책은 치매를 가족의 사건으로만 두지 않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대비의 문제로 확장한다.

초반 일기에는 날짜와 계절, 가족의 이름, 밭일과 김장철의 냄새, 모임과 봉사 같은 일정이 촘촘히 적힌다. 여행을 준비하고, 손주들의 성장과 생일을 적어 두는 장면도 이어진다. 저자는 이 기록을 “성실하고 따뜻한 생의 기록”으로 읽어낸다. 병든 남편을 돌보며 가정을 지키는 하루가, 어느 순간부터 작은 균열을 품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며 기록은 사건의 정리에서 감정의 토로로 기울어진다. 방문한 자식을 잊고 서운함을 되풀이하거나, 연락이 뜸하다는 이유로 불효를 단정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남편의 외출을 의심하는 망상은 관계의 안전망을 흔든다. 증상이 깊어지면 요양원 입소와 면회가 일상이 되고, 가족의 시간은 ‘기억 왜곡’과 ‘감정 폭주’ 사이를 오간다. 끝내 어머니가 남편의 사망조차 모른 채 자식과 마주하는 장면은 치매가 남기는 공백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책은 그 왜곡의 밑바닥에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이 놓여 있다고 짚는다. 기억이 비는 자리를 불안이 채우고, 관계는 상처의 형태로 굳어 간다.

구성은 프롤로그와 4개 장, 에필로그로 짜였다. ‘평범한 날들의 찬란함’에서 ‘흔들리는 기억’과 ‘무너지는 감정’의 국면을 지나, 끝내 침묵의 장면으로 옮겨 간다. 각 장의 끝에는 해설이 붙어 일기 속 반복과 어휘 변화를 통해 진행 단계를 읽게 한다. “감사합니다”, “주님” 같은 표현을 정서기억의 자동 회상으로 해석하는 대목은, 치매가 단순한 기억 저하가 아니라 감정과 관계의 병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에필로그에는 세대별 치매 대비 가이드와 치매 병리 개념 정리를 실어, 독자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한다.

저자 석상혁은 보험업계에서 ‘라이프사이클’ 개념을 소개하고 강연과 연구를 이어 온 인물로, 이번 책에서 삶의 설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가족의 언어로 기록한다. 『치매 어머니의 일기장』은 치매의 잔혹함을 과장하지 않고, 무너진 시간의 질서 속에서도 남는 감정을 따라간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과 곁을 지키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말의 방식이다. 이 책은 그 말의 단서를 일기장이라는 가장 사적인 기록에서 길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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