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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지옥을 그려 낸 불안한 풍경화” 『오래된 뜬구름』 출간(찬쉐, 열린책들)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 찬쉐 문학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강렬한 입구
출판사 제공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히는 중국 작가 찬쉐의 중편 소설 『오래된 뜬구름』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해외에서 가장 널리 번역된 중국 여성 작가로 불리는 찬쉐의 초기작이자, 그의 문학 세계를 집약한 강렬한 실험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웃에 사는 두 부부와 주변 인물들의 일상을 묘사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읽다 보면 현실과 꿈, 삶과 파멸의 경계가 흐려지는 악몽 같은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최근 문학계에서 불안과 혐오, 인간 소외를 새롭게 읽어내려는 독자들에게 특히 주목받을 만한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집 앞에 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작은 동네다. 그러나 이 동네는 평온한 생활공간이라기보다, 서로를 감시하고 의심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사람들의 내면이 외부 풍경과 뒤엉킨 기묘한 무대에 가깝다. 인물들은 문에 쇠꼬챙이를 박아 스스로를 지키고, 나무에 거울을 매달아 이웃을 살핀다. 이름조차 또렷이 불리지 못하고 ‘그’와 ‘그녀’로만 불리면서, 서로의 감정과 불안을 투사하는 존재로 변해 간다. 닥나무의 꽃과 붉은 열매, 칙칙한 낮과 들끓는 벌레 소리 같은 이미지는 소설 전체를 가로지르는 불길한 징조처럼 반복되며, 독자의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찬쉐의 문장은 논리적인 설명보다 이미지의 충돌과 몽환적인 장면 전환에 더 가깝다. 새가 붉은 열매를 쪼아 떨어뜨리는 소리, 황혼 무렵 들려오는 무수한 작은 소리들, 어둠 속에 가라앉은 낮 풍경 같은 장면들은 독자의 머릿속에 한 편의 추상화를 그려 놓는다. 한 평론가가 이 작품을 두고 “지구 종말의 풍경을 그린 소설”이라고 부른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인간의 선함이나 화해의 가능성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대신 질투와 원망, 냉담과 억압이 촘촘한 그물처럼 인물들을 옭아맨다. 이 작품 속 세계는 낯설지만, 동시에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과도 묘하게 겹쳐 보인다.
찬쉐는 문화 대혁명기의 후난성에서 성장했다. 정치적 탄압으로 부모가 끌려간 뒤,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 곁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의 소설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스스로 문학과 철학을 독학한 그는 단테, 보르헤스, 카프카와 중국 전통 무속 신앙을 흡수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수전 손택은 “중국 최고의 작가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라고 찬쉐를 치켜세웠고,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은 그를 “매우 특별한 작가”로 소개해 왔다. 『오래된 뜬구름』은 그 명성을 낳은 초창기 실험의 결정판에 가깝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을 맡은 김태성은 중국어 문학 번역계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타이완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까지 백여 권이 넘는 중국 문학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원문의 기이한 문체와 파편적인 리듬, 시적 이미지가 한국어로 매끄럽게 옮겨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오랜 번역 경험 덕분이다. 번역자는 해설에서 이 작품을 “인성의 잔인함과 추악함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으로 규정하며, 독자들이 이 지옥 같은 풍경 속에서 아주 희미한 한 줄기 빛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래된 뜬구름』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재미보다, 한 문장 한 문장을 통과하며 낯선 감각과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소설이다. 깔끔한 결말과 위로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인간 소외와 혐오, 무기력이라는 오늘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작품을 찾는 이들에게는 오래 남을 한 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몽롱한 빛과 어두운 그림자의 대비 속에서 천천히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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