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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시력의 집약, 『헛되이』(최영미, 이미출판사)

사랑과 싸움, 일상과 가족까지 62편의 시로 엮은 첫 시선집

장세환2026년 8월 26일 오후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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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이.jpg출판사 제공

최영미 시인이 데뷔 35년 만에 첫 시선집 『헛되이』를 출간했다. 이미출판사에서 펴낸 이번 책은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8권의 시집에서 사랑, 싸움, 일상, 가족, 시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62편을 가려 뽑아 엮었다. 1994년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후 시대를 대표하는 목소리로 자리 잡은 그의 시 세계를 한 권에 담아낸 것이다.

책 속에는 나긋한 연애시에서 살벌한 투쟁의 시까지,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언어가 교차한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이라는 「선운사에서」의 구절은 사랑의 덧없음을, “혁명은 이제 광고 속에만 있다”라는 「지하철에서: 노란 10월」은 시대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길을 잃어본 자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나의 여행」)는 구절은 상처와 재생의 힘을 상징한다.

출판 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던 「Personal Computer」도 포함됐다. 1990년대 컴퓨터 명령어를 시에 삽입해 기계문명에 대한 풍자를 시도한 작품으로, AI 시대를 예고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부 표현은 삭제되었지만, 시인의 의도와 시대적 맥락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남았다.

문정희 시인은 추천사에서 “최영미의 시는 벌거벗은 검투사의 창처럼 위험하다. 예측 불허의 표현과 자유로운 사고 속에 온몸을 던져 쓴 시집”이라고 평했다. 사랑과 상처, 사회적 투쟁과 일상의 언어를 담아낸 이번 시선집은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헛되이』는 최영미가 2019년 설립한 이미출판사의 10번째 책으로, 표지 사진 역시 시인이 직접 촬영했다. 일본에서 출간된 시선집 『詩を灯し野にゆく』를 참고해 편집과 배치를 구성했으며, 한국 독자에게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본격적인 시선집이다. “헛되이 너를 사랑했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사랑과 투쟁, 일상과 상처를 노래한 그의 언어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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