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범죄를 판단하고 처벌하지만, 상처 입은 사람의 삶까지 완전히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법 그 자체보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해진다. 『지키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는 성폭력 전담 검사로 15년을 살아온 김세희가 사건 기록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아낸 현장 에세이다.
이 책의 저자 김세희는 2010년 검사로 임관한 뒤 울산지검, 대구지검, 서울남부지검, 부산지검, 서울중앙지검 등에서 근무하며 성폭력 사건을 비롯한 1만9500여 건의 형사사건을 담당했다. 특히 많은 국민에게 알려진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수사검사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처리한 1만9500건을 사건 번호로 기억하지 않는다. 판결문과 기록 너머에서 울고 웃고 절망하고 용기를 냈던 사람들의 얼굴로 기억한다. 『지키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는 바로 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책은 크게 성폭력 사건의 진실, 사건 너머 마주한 사람들, 검찰 조직 안에서 살아가는 검사들의 이야기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친족 성폭력 피해자와 아동·청소년 피해자, 장애인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 등 자신의 피해를 온전히 설명하기조차 어려웠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저자는 피해자들에게 가장 힘든 순간이 범죄 자체보다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일 수 있다고 말한다. 친족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만났던 어린 피해자들은 의붓아버지의 범죄를 말하면서도 가족이 무너질까 봐 걱정했고, 자신보다 동생의 미래를 더 걱정했다. 저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사회가 피해자를 대신해 보호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책 곳곳에는 법률 문서로는 남지 않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피해자가 고개를 숙인 채 내뱉은 한마디, 합의서 한 장을 남기고 떠난 아이, 진술을 포기하려 했던 피해자의 흔들리는 눈빛 등이 생생하게 기록된다. 저자는 법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피해자의 진술이지만, 그 진술 뒤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고통 역시 사회가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 관한 기록이다. 당시 경찰이 중상해 사건으로 송치한 사건을 재검토하며 성폭력 정황을 밝혀낸 저자는 수사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말했던 순간을 회상한다. 이후 피해자인 김진주 작가와의 인연은 단순한 수사관계가 아닌 연대로 이어졌다. 김진주는 추천사를 통해 "이런 사람이 있기에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피해자만을 이야기하는 책도 아니다. 저자는 가해자와 피의자에 대한 고민 역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검사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언제나 확신에 찬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이런 판단을 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사건을 바라봤다고 고백한다.
특히 초임 검사 시절 특수절도 혐의로 송치된 한 소년의 사건은 인상적이다. 저자는 얇은 수사 기록 속에서 소년이 범행의 주도자가 아닐 가능성을 발견하고 직접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결국 소년이 범죄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훗날 건실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모습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이 경험은 법의 역할이 처벌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미래를 지켜주는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또한 책은 검사라는 직업의 현실적인 이면도 보여준다. 조직생활, 사건 압박, 인사이동, 야근, 검사들 사이의 관계, 회식 문화뿐 아니라 여성 검사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어려움도 솔직하게 담겨 있다. 원거리 근무로 아이와 떨어져 지내며 느꼈던 죄책감, 엄마와 검사 사이에서 흔들렸던 마음, 책임감에 짓눌렸던 시간들이 담담하게 기록된다.
김세희는 결국 2024년 검찰을 떠났다. 하지만 책은 사직에 대한 후회보다 감사에 가깝다. 그는 자신을 성장시킨 것도 검사라는 직업이었고, 떠나는 결정을 통해 또 다른 성장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했던 직업에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키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는 검찰 조직을 옹호하거나 특정 사건의 이면만을 조명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한 사람이 검사라는 직업을 통해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법과 제도는 결국 사람을 위해 존재하며, 피해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혼자 싸우게 두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의의 출발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판결문에는 남지 않는 눈물과 침묵, 그리고 다섯 평 검사실에서 오갔던 수많은 이야기들. 『지키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는 한 검사의 진심 어린 고백이자, 법이 미처 다 닿지 못한 곳을 향한 따뜻한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