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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림을 그렸고, 누가 그 이름을 빼앗았는가, 『에티의 여름』(루시 스티즈, 다산책방)

1920년대 프로방스의 뜨거운 여름, 천재 화가의 비밀 뒤에 가려진 한 여성의 재능과 자유를 그린 화제의 데뷔작

장세환2026년 8월 4일 오전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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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의 여름.jpg위대한 예술 작품 뒤에는 누가 있었을까. 우리는 화가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그의 곁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에티의 여름』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1920년대 프랑스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거장의 명성 뒤에 가려진 한 여성의 재능과 욕망, 그리고 자유를 향한 갈망을 서스펜스와 로맨스 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루시 스티즈의 데뷔 장편 『에티의 여름』은 출간과 동시에 영국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워터스톤스 ‘올해의 데뷔작’과 ‘올해의 책’을 동시에 수상했고, 《선데이 타임스》와 《USA 투데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평단과 독자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초고만으로 아홉 명의 문학 에이전트가 경쟁을 벌인 작품이라는 사실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이야기는 1920년 여름, 한 통의 짧은 편지와 함께 시작된다.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던 영국인 기자 조지프는 전설적인 화가 타르튀프를 취재하기 위해 프로방스의 외딴 농가를 찾는다. 그러나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화가는 인터뷰를 거부하고, 대신 그의 조카 에티가 조지프를 모델이라 소개하며 집 안으로 들인다. 그렇게 폐쇄된 공간에서 세 사람의 기묘한 여름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천재 화가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던 이야기는 점차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어느 날 밤 조지프는 에티가 타르튀프의 그림을 불태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히 걸려 있다. 에티는 조지프에게 "헛것을 본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순간부터 독자들은 화가와 에티를 둘러싼 비밀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예술과 미스터리의 결합이다. 독자는 에티와 조지프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더 거대한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타르튀프의 명성과 예술 세계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그리고 에티가 왜 어둠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서서히 긴장감을 높여간다.

특히 작품은 여성 예술가들의 역사적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여성은 뮤즈나 모델이 될 수는 있어도 화가는 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시대. 에티는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상징한다. "아무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그의 고백은 예술사 속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침묵과 소외를 보여준다.

루시 스티즈는 눈앞에서 그림이 완성되는 듯한 감각적인 문체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뜨거운 햇살 아래의 올리브나무, 라벤더 향기가 번지는 들판, 유화 물감의 질감과 복숭아의 달콤한 향기까지 프로방스의 풍경은 오감을 자극하며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히 읽는 경험을 넘어 하나의 풍경을 살아내는 경험에 가깝다.

그러나 『에티의 여름』은 아름다운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작품의 중심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찾으려는 한 여성의 치열한 투쟁이 자리한다. 타인이 만든 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하기 위한 싸움이다. 에티의 여정은 예술가의 성장기이면서 동시에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보편적인 갈망을 담아낸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세계문학을 공부한 루시 스티즈는 영국학술원 연구원 생활을 접고 소설 집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단 한 권의 작품으로 영국 문단이 가장 주목하는 신예 작가가 되었다. 『에티의 여름』은 예술과 사랑, 욕망과 자유, 그리고 잊혀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눈부신 프로방스의 여름 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올여름 가장 아름답고도 강렬한 이야기를 찾는 독자라면 주목할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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