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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세계에 균열을 내는 시집 『쉼표를 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성향숙 지음, 청색종이)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시로 풀어낸 네 번째 시집

장세환2026년 6월 5일 오후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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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를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jpg출판사 제공

성향숙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쉼표를 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가 청색종이에서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가족과 유년의 기억, 여성의 삶, 사랑과 이별, 상실과 회복, 노년과 죽음, 그리고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까지 폭넓은 주제를 담아내며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문학평론가 김지윤은 해설에서 이번 시집을 “닫힌 세계에 균열을 내는 시”라고 평했다. 실제로 작품 곳곳에는 어항, 유리 상자, 사각의 고독 같은 폐쇄된 공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성향숙 시인은 이 공간들을 단순히 절망의 상징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꿈꾸고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들의 움직임을 포착해, 닫힌 세계를 생의 깊이를 탐색하는 실험실로 전환한다.

표제작 「쉼표를 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는 멈춤과 지연의 시간을 새로운 생성의 시간으로 바라본다. 시인은 상처와 고독, 상실의 시간을 끝까지 응시하며 그 안에서 피어나는 미세한 빛을 발견한다. 이는 삶의 어두운 시간을 건너는 독자들에게 다시 살아갈 이유와 조용한 힘을 전한다.

이번 시집은 동시대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버퍼링’, ‘틱톡’, ‘육각형 인간’, ‘불쾌한 골짜기’, ‘사건의 지평선’ 같은 표현들은 시인의 언어 속에서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상징으로 변모한다. 디지털 시대의 불안과 고독을 시적 이미지로 전환해낸 점은 이번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색채 감각도 돋보인다. 「석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리스트 컷」 등에서 반복되는 붉음의 이미지는 생명과 감정의 폭발을 상징한다. 반면 검정은 고독과 은폐의 색으로 등장하지만, 시인은 그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붉음을 발견한다. 이는 상처와 절망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생의 의지를 보여준다.

가족과 유년의 기억을 다룬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완두콩」, 「원피스」, 「섬집 아기」 등은 개인적 기억과 가족의 상처를 섬세하게 포착하면서도 원망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와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인간 존재의 복잡한 감정을 따뜻하게 기록한다.

성향숙 시인의 시는 절망을 희망으로 덮어버리지 않는다. 대신 상처와 고독을 끝까지 응시하며 그 안에서 피어나는 작은 빛을 보여준다. 닫힌 세계에 생긴 균열을 통해 스며드는 햇살처럼, 그의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조용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전한다.

『쉼표를 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는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쉼표 같은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결국 새로운 의미와 힘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번 시집은 존재의 고통을 정직하게 기록하면서도, 그 고통이 끝내 삶의 긍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성숙한 시적 성취로 평가된다.

출판사 청색종이는 이번 출간을 통해 “닫힌 세계를 깨뜨리는 다정한 균열”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며, 성향숙 시인의 시가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목소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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