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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 하나가 긴 침묵보다 깊게 남는다”, 『맨손으로 바람을 움켜쥐다』 출간(원철, 담앤북스)

사진 한 장과 몇 줄의 시선으로 건네는 고요한 위로

장세환2026년 5월 27일 오후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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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바람을 움켜쥐다.jpg출판사 제공

눈 덮인 길목, 오래된 우물, 공항 대합실, 창문 너머의 강아지 한 마리. 스쳐 지나갈 법한 풍경 앞에서 잠시 멈춰 선 시선이 짧은 문장이 된다. 원철 스님의 신간 『맨손으로 바람을 움켜쥐다』는 그렇게 일상 속 순간들을 붙잡아 삶의 감각으로 되돌려놓는 시선집이다.

담앤북스에서 출간한 『맨손으로 바람을 움켜쥐다』는 대한불교조계종 연구소장인 원철 스님의 두 번째 시선집이다. 스님은 그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사진 한 장과 짧은 글을 꾸준히 올려왔고, 이번 책에는 그 기록들 가운데 오래 마음에 남는 문장들을 가려 담았다.

책은 ‘멈추고 바라보다’, ‘고요가 말을 걸다’, ‘흐름을 만나다’, ‘다시 그 길 위에 서다’ 등 네 개 장으로 구성됐다. 풍경 사진과 짧은 시구, 그리고 그 뒤에 덧붙인 사유가 이어지며 독자를 조용한 사색의 자리로 이끈다.

특히 원철 스님의 문장은 수행자의 언어답게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나 짧은 문장 속에는 삶을 오래 바라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위트와 통찰이 스며 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서울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적어 내려간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길의 고민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건드린다. 이어지는 “우리는 그냥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닐까”라는 문장은 현대인의 피로와 그리움을 동시에 품는다.

책 곳곳에는 무겁지 않은 유머도 살아 있다. 함안 읍내에서 발견한 간판 하나를 보며 “스타벅스는 술타먹스로”라고 비튼 대목에서는 선문답 같은 재치가 번뜩인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수건 한 장에 겹쳐놓는다.

“어린 시절 이유 없이 친했고
조건 없이 서로를 믿었던
작고 때 묻은 손들의 기억.”

스님은 거창한 깨달음보다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오래 바라보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길어 올린다. 겨울 절기 동지를 두고는 “밤과 낮이 절기 따라 짧거나 길어지지만 그럼에도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라고 적으며,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도 삶은 결국 흘러간다는 사실을 담담히 전한다.

사진과 시가 결합된 형식 역시 이 책의 특징이다. 서울 북촌길의 낡은 물 펌프, 인도 델리의 계단식 우물, 인천공항 대합실 풍경까지, 장소와 날짜를 함께 기록해 독자들이 실제 그 공간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원철 스님은 한문 불교 경전과 선어록 번역, 강연과 집필 활동을 이어오며 대중과 꾸준히 소통해왔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삶과 수행의 언어를 현대적으로 풀어내 왔다.

『맨손으로 바람을 움켜쥐다』는 빠르게 소비되는 말들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책이다. 짧은 문장과 한 장의 풍경이 때로는 긴 설명보다 더 깊게 마음에 남는다는 사실을, 이 시선집은 조용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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