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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엮은 선배의 산문,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출간(신경림·도종환, 창비)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람을 품은 시인의 마지막 목소리”

장세환2026년 5월 15일 오후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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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jpg출판사 제공

고(故) 신경림 시인의 2주기를 맞아 유고 산문집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가 출간됐다. 이번 책은 평생 시와 삶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걸어온 시인의 사유와 기록을 한데 모은 산문집으로, 굴곡진 현대사를 통과하며 끝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던 한 문학 거장의 마지막 목소리를 담아낸다.

책 제목은 널리 사랑받아온 시 「목계장터」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화려한 중심보다 낮은 자리의 삶을 택했던 신경림 문학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엮은이 도종환 시인은 “신경림 선생이 고뇌하며 걸어온 길이 곧 우리 문학이 걸어온 길”이라고 말하며, 이번 산문집이 단순한 유고집이 아니라 한국 현대문학사의 한 축을 증언하는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광복과 한국전쟁, 4·19혁명, 군사독재와 6월항쟁에 이르는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 시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돌아본다. 신경림 시인은 저항시와 민중시의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문학이 단순한 구호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 성찰이 없는 시가 아무리 옳은 소리만 골라 한다 해도 독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적으며, 시가 결국 인간 내면의 진실에 닿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2부에서는 시인 자신의 문학 여정이 펼쳐진다. 초기 서정시에서 『농무』에 이르기까지의 변화, 시대와 현실 속에서 시를 계속 갱신하려 했던 고민, 그리고 “내 시로부터의 도망”이라 표현했던 긴 방황의 시간이 담겨 있다. 그는 시를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영혼의 여행”이라 말하며, 시 쓰기가 곧 자신과 시대를 동시에 탐색하는 과정이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이번 산문집에는 신경림 문학의 바탕이 되었던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 감각이 깊게 배어 있다. 남한강과 시골 마을, 장터와 사람들 속에서 세상을 배웠다고 회상하는 문장들은 그의 시 세계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강이 마을과 마을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이어주는 존재였다는 그의 표현은, 평생 그가 지향했던 ‘소통과 공존의 윤리’를 상징처럼 드러낸다.

3부에서는 사회와 현실을 향한 시인의 시선이 이어진다. 교육, 환경, 통일, 빈부격차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는 언제나 “가장 낮은 자세”를 이야기한다. 상대를 높이고 존중하는 태도가 사라질 때 사회 역시 병들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인간을 향한 존엄과 연민을 끝까지 붙든다.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신경림 시인은 1956년 「갈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농무』 『가난한 사랑노래』 『남한강』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민중의 삶과 시대의 상처를 가장 낮고 따뜻한 언어로 품어낸 그는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타계한 뒤에도 그의 시와 산문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질문을 건네고 있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는 단지 한 시인의 마지막 산문집이 아니다. 빠른 성공과 경쟁의 언어가 가득한 시대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를 묻는 기록에 가깝다. 들꽃과 잔돌의 자리로 기꺼이 내려가려 했던 시인의 문장은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오래 남는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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