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상세
짧은 문장과 여백으로 감각을 기록하다, 『말끝을 스치는 서정의 기록』 출간 (현은호, 미다스북스)
이미지와 문장을 병치해 일상의 언어와 감정의 순간을 포착한 산문집
출판사 제공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말을 주고받지만, 그중 대부분은 쉽게 지나간다. 『말끝을 스치는 서정의 기록』은 그런 말들 가운데 미처 붙잡히지 못하고 스쳐 간 감각을 짧은 문장으로 남긴 산문집이다. 이 책은 장문의 서사나 명확한 논증 대신, 순간적인 인식과 정서를 기록하는 방식에 가까운 형식을 취한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구성 방식이다. 본문은 좌측에 이미지, 우측에 문장을 배치해 독자가 두 요소를 동시에 읽거나, 따로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미지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문장 역시 이미지를 해석하지 않는다. 두 요소 사이의 간격과 여백이 독자의 해석을 유도한다.
수록된 글은 대체로 짧고 간결하다. 문장은 시에 가까울 만큼 축약되어 있으나, 형식적으로는 산문에 머문다. 시와 에세이, 소설의 경계에 정확히 위치하기보다는 그 사이를 오가는 방식이다. 장면을 설명하거나 맥락을 제공하기보다, 감정이 스쳐 간 자리만을 남긴다.
내용적으로는 사랑과 이별, 기쁨과 상실 같은 보편적인 감정들이 등장하지만, 특정 사건이나 서사는 드러나지 않는다. 저자는 감정의 원인이나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그 감정이 잠시 머물렀던 언어의 표면만을 기록한다. 교훈이나 메시지는 암시되지 않는다.
책의 구성 역시 최소화되어 있다. ‘첫말’, ‘중간말’, ‘끝말’이라는 세 개의 큰 구분만이 목차를 이룬다. 시간의 흐름이나 주제별 배열보다는, 독자가 어디에서 시작하든 무방하도록 열린 구조다. 연속해서 읽기보다는, 임의의 페이지를 펼쳐 머무르도록 설계된 형식이다.
저자 현은호는 글쓰기를 ‘마음과 닮은 언어로 인간에게 닿는 일’로 정의한다. 이 책은 그 정의를 설명하기보다는 형식과 밀도로 보여 주는 쪽에 가깝다. 문장은 말의 끝, 혹은 말이 되기 직전의 상태에 머무르며 완결을 유보한다.
『말끝을 스치는 서정의 기록』은 속도감 있는 독서보다는 느린 체류를 전제로 한다. 모든 문장을 이해하거나 해석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문장과 이미지 가운데 어느 하나에 시선이 멈추는 지점 자체가 읽기의 완성이 된다.
이 책은 감정을 전달하려 하기보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를 보존하려는 기록에 가깝다. 언어의 효용이나 명확성을 앞세우지 않고, 여백과 간결함을 통해 독자의 감각을 호출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에세이와는 다른 결을 가진다.
『말끝을 스치는 서정의 기록』은 장르적 규정이나 메시지 중심 독서보다는, 말과 이미지가 나란히 놓인 공간을 천천히 통과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출간물이다. 일상의 언어가 어떻게 서정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를 형식 자체로 보여 주는 책이다.
관련 기사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