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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어린이의 시간을 기록하다, 『이제, 나에게 어린이날은 없다』 신간 (안보영·솔아북스)

1980년대 한 초등학생의 일기로 읽는 한 시대의 감성과 생활사

장세환2026년 4월 29일 오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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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에게 어린이날은 없다.jpg출판사 제공

『이제, 나에게 어린이날은 없다』는 1980년대 한 초등학생이 남긴 일기장을 정리해 엮은 책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여섯 해 동안 하루하루를 기록한 이 일기는 특정 개인의 성장 기록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생활사이자 감성의 아카이브로 읽힌다.

저자 안보영은 어린 시절 자신이 쓴 일기를 다시 꺼내어, 시간의 먼지를 털 듯 한 해 한 해를 따라가며 독자 앞에 펼쳐 보인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아이는 자연과 학교, 친구와 가족 속에서 하루를 살아낸다. 그 기록은 의도적인 회고나 해석 없이, 당시의 언어와 호흡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책은 학년별로 구성되어 있다. 1학년의 단순함, 2학년의 호기심, 3학년의 흔들림, 4학년의 사색, 5학년의 관찰, 6학년의 전환이 차례로 이어진다. 각 학년 말에는 현재의 시점에서 짧은 해설이 덧붙여지지만, 텍스트의 중심은 여전히 아이의 목소리에 놓여 있다.

일기 속에는 특별한 사건보다 사소한 하루가 반복된다. 시험, 체육대회, 비 오는 날의 기분, 친구와의 대화, 가족과의 저녁, 라디오와 책, 운동회와 소풍 같은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 일상은 꾸며진 서사가 아니라, 당시 어린이가 세계를 받아들이던 방식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제, 나에게 어린이날은 없다”는 문장은 6학년 일기에서 등장한다. 이 문장은 단순히 어린이날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감각적 전환의 순간을 담고 있다. 보호받던 존재에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존재로 옮겨 가는 경계가 이 한 문장에 응축되어 있다.

『이제, 나에게 어린이날은 없다』가 갖는 의미는 개인의 추억을 넘어선다. 1980년대 초등학생의 일기는 지금까지 거의 출간된 적이 없는 기록으로, 당시의 학교문화, 가정 풍경, 놀이 방식, 공부에 대한 인식, 감정 구조를 꾸밈없이 보여 준다. 이는 특정 개인의 서사를 넘어 한 세대의 감각을 증언하는 자료로 기능한다.

저자는 이 일기를 ‘복원’의 작업으로 제시한다. 사라져 가던 감성을 다시 불러내는 동시에, 지금의 독자에게 “너의 마음은 오늘 어디서 흔들렸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빠르게 기록되고 쉽게 소비되는 오늘의 일상과 달리, 이 일기 속 하루는 느리게 흘러가며 감정의 여백을 남긴다.

의사로 살아온 현재의 저자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평가하거나 교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때의 문장을 그대로 두고, 독자가 그 감각을 직접 만나도록 한다. 이 절제된 태도는 이 책이 회고록이나 교육적 에세이가 아니라, 하나의 기록물로 읽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이제, 나에게 어린이날은 없다』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쓴 문장들이 시간이 지난 뒤 어떤 울림을 갖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 작은 일기장이 모여 한 시대의 풍경을 복원하는 이 책은, 어린 시절을 지나온 독자에게는 기억의 통로가 되고, 다른 세대에게는 잃어버린 감각을 상상하게 하는 자료가 된다.

이 책은 말한다. 한 아이의 하루는 사소해 보여도, 그 하루들이 모여 한 시대의 마음을 이룬다고. 『이제, 나에게 어린이날은 없다』는 바로 그 마음의 지도를 조용히 펼쳐 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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