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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빚는다는 것은 과정을 존중하는 일이다 『차근차근 전통주』 신간 (박운석 | 서고)

집에서 빚는 막걸리부터 증류주까지, 전통주를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서

장세환2026년 4월 27일 오후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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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전통주.jpg출판사 제공

『차근차근 전통주』는 술을 만드는 책이지만, 단지 ‘레시피 북’은 아니다. 이 책에서 술 빚기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지름길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고 시간을 견디는 과정에 가깝다. 전통주 교육 현장에서 수천 명의 수강생을 만나온 박운석 저자는, 실패를 줄이는 방법보다 실패가 왜 일어나는지를 먼저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책은 전통주를 낭만이나 취향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주를 과학과 제도, 역사와 생활의 교차점에 놓는다. 저자는 전통주를 이렇게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주세법상으로는 알코올 함량 1% 이상의 음료를 술이라고 한다.
주세법상 술은 크게 4종류로 나눈다.”

이 문장은 이 책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주를 이야기하면서도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향이나 멋이 아니라 법과 분류다. 박운석은 전통주를 오해 없이 만들기 위해,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전통주 입문자라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술, 삼양주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삼양주는 세 차례에 걸쳐 술을 빚어 넣는다는 말이다.
대체로 전통주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시작하는 술이 삼양주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왜 삼양주가 입문 술인지에 대한 암묵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전통주 빚기는 용기나 감각보다 확률과 안정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실패 가능성을 낮추는 선택이 곧 배우는 과정이 된다는 관점이 이 책 전반을 지배한다.

『차근차근 전통주』의 인상적인 부분은 복잡한 발효 과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방식이다.

“알코올 발효는 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과 탄산가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 문장은 전통주 빚기를 신비의 영역에서 과학의 언어로 끌어온다. 박운석은 발효를 운이나 감에 맡기지 않는다. 효모, 당, 온도, 시간이라는 변수를 명확히 제시하며, 술은 ‘기다림의 결과’이지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반복해 강조한다.

책의 구성은 제목 그대로 ‘차근차근’ 진행된다. 전통주의 개념과 분류에서 시작해, 재료와 도구, 밑술과 덧술, 실습과 문제 해결, 증류와 누룩 제조까지 단계별로 이어진다. 특히 5장의 실습 파트와 6장의 이상 현상 해결 파트는 이 책이 현장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술덧이 끓어오르거나, 신맛과 쓴맛이 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를 가장 중요한 학습 도구로 삼는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책이 ‘집에서 가능한 전통주’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값비싼 설비나 전문 장비 없이도, 가정에서 구할 수 있는 도구로 술을 빚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전통주를 장인만의 영역이 아니라, 다시 일상의 기술로 되돌리려는 시도처럼 읽힌다.

후반부에서 다루는 전통소주 증류와 누룩 제조는 입문서의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밀도가 높다. 그러나 이 역시 ‘전문가용 과시’라기보다는, 어디까지 배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도에 가깝다. 저자는 이 책 한 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차근차근 전통주』는 술을 잘 마시기 위한 책이 아니라, 술을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K-푸드 열풍과 함께 전통주가 다시 주목받는 지금, 이 책은 전통주를 유행의 대상으로 소비하기보다, 과정과 원리를 존중하는 문화로 다루자고 말한다.

술을 빚는다는 것은 결국 기다림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을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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