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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묻은 언어가 도착한 자리 『삽질 인생』 신간 (김기태 | 이든북)
토목 현장에서 길어 올린 시,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된 문장들
출판사 제공
김기태의 시집 『삽질 인생』은 시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시가 어떤 삶에서 나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 평생 토목 현장에서 일해온 시인은 화려한 은유나 기교 대신, 몸으로 견딘 시간의 감각을 언어로 옮긴다. 이 시집에서 ‘삽질’은 실패의 자조가 아니라, 끝까지 파고 들어간 삶의 방식 그 자체다.
책 속에서 시인은 시에 대해 이렇게 쓴다.
시는
소갈머리 없는 이의 허튼소리 같기도 하고
노를 젖다 힘이 들어 술 마시고 중얼거린
소동파의 푸념 같기도 하고
이 시는 시 자체에 대한 정의이자, 이 시집의 미학적 선언처럼 읽힌다. 시는 고상한 담론이 아니라, 지치고 힘든 몸이 터뜨린 중얼거림에 가깝다는 인식이다. 김기태에게 시는 완성된 언어가 아니라, 삶이 남긴 잔여물이다. 노를 젓다 지친 사람의 푸념처럼, 노동 이후에 남은 말.
시인은 이어서 시를 이렇게 확장한다.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 울리고 떠나는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가슴 속에 쌓여 있는 진언眞言을 캐내는
철학 같기도 한데
여기서 시는 소리이자 사유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면서, 동시에 가슴 속에 쌓인 말을 캐내는 노동이다. ‘캐낸다’는 표현은 시 쓰기를 채굴 작업에 비유한다.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듯, 시인은 자신의 삶을 파헤쳐 언어를 꺼낸다. 이 비유는 이후 『삽질 인생』 전체를 관통한다.
시의 후반부는 이 시집의 윤리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나는 중언부언 기술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옹알이하며
부처님의 미소가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몰라
하늘에 헛발질도 하고 살았는데
기술자의 눈으로 본 세상, 옹알이처럼 더듬거리는 언어, 헛발질이라는 자기 고백은 이 시집의 정조를 결정한다. 김기태의 시는 자신을 미화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실패와 망설임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헛발질도 하고 살았다”는 문장은 이 시집에서 가장 중요한 고백에 가깝다. 그것은 반성이 아니라 생존의 기록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시와 삶의 관계를 명료하게 선언한다.
시인은 자기가 쓴 시처럼 살아야 하기에
시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시인을 꿈꾸며
오늘을 살고 싶다.
여기서 『삽질 인생』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 선언문이 된다. 시는 문학적 성취가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언어다. 말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이 신념은 시집 전체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책은 「온동 생각」에서 노년의 삶과 가족, 세월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짧은 생각들」에서 판단과 감각을 압축한 문장들로 이어진다. 「좌우명」과 「토목기술자의 법문」에서는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물며, 현장에서 체득한 윤리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 구성은 시가 책상 위에서 탄생하지 않았음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삽질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시가 ‘잘 쓰였다’기보다 ‘끝까지 살아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노동의 언어가 있고, 실패의 시간들이 있고, 가족과 노년을 직면한 솔직한 시선이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대신 가볍지 않다.
이 시집은 독자에게 시적 감동보다 먼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처럼 살고 있는가. 김기태의 시는 그 질문을, 흙 묻은 손으로 조용히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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