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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꾸지 않고도 정원이 되는 곳 『고요히 꽃잎을 바치다』 신간 (이동협, 목수책방)

선암사에서 마주한 자연과 무위의 질서를 기록한 정원 사진 에세이

장세환2026년 4월 24일 오후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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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꽃잎을 바치다.jpg출판사 제공

“제일 좋은 정원은 어디인가요?”
오랜 시간 정원을 기록해 온 정원사 이동협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고요히 꽃잎을 바치다』는 그 질문에 대한 다급한 답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는 성찰에 가깝다. 이 책은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를 12년 동안 지켜본 한 정원사가, 정원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고 천천히 기록한 시간의 책이다.

『고요히 꽃잎을 바치다』는 선암사를 ‘잘 가꾼 정원’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이 왜 굳이 가꾸려 애쓰지 않아도 정원이 되는 장소인지에 주목한다. 외래종을 들이지 않고, 월동을 위한 인위적 보호도 최소화한 채, 계절과 지형에 순응하며 유지되는 선암사의 풍경은 현대 정원 문화가 당연하게 여겨온 관리와 연출의 개념을 조용히 되돌려놓는다.

저자 이동협은 조경학을 전공했지만 4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방송사에서 보낸 뒤, 개인의 삶 속에서 정원을 가꾸고 기록해온 ‘정원 사랑꾼’이다. 그는 정원을 사업이나 성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신, 오늘의 자연 현상이자 진행형의 공간으로 이해해 왔다. 이 책에 담긴 선암사의 풍경 역시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매 순간 달라지는 살아 있는 과정으로 포착된다.

책은 1년 열두 달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었다. 2월에서 시작해 겨울로 돌아오기까지, 같은 장소는 단 한 번도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꽃은 피고 지며, 나무는 소리 없이 계절을 넘긴다. 화려한 봄날에도, 꽃이 모두 지고 난 후에도 선암사의 나무들은 늘 제자리에 서 있다. 그 꾸준함은 이 정원이 전시나 과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고요히 꽃잎을 바치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무위(無爲)’다. 관리는 하되 남다른 풍모를 위해 애쓰지 않고, 자랑이나 욕심 없이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태도. 이 정원에는 노동의 고통과 성과 압박이 없다. 대신 구도와 공양이라는 산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식물과 공간이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태를 지속 가능성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로 바라본다.

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꽃 공양’이다. 선암사의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꽃 공양은 언어로 닿을 수 없는 부처의 세계를 예술로 표현하는 사찰 장엄의 일부다. 전각 내부의 불상과 단청, 꽃살문뿐 아니라, 지형에 순응한 가람 배치와 자연과의 조화까지 포함해 산사 전체가 하나의 장엄 예술로 기능한다. 저자는 이 점에서 선암사의 정원을 인간의 정원이 아닌, 자연과 신앙이 함께 만든 공간으로 바라본다.

사진과 글은 과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풍경은 사진으로는 끝내 담기지 않는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강선루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법한 빛과 잔가지의 조합은 오로지 눈으로만 느낄 수 있는 장면으로 남겨진다. 기록은 소유가 아니라, 목격에 가까워진다.

이 책은 정원을 빠르게 소비하는 시대에, ‘정원의 순간’을 느리게 체험하자고 권한다. 혼자 가도 좋고, 함께 가도 좋고, 아무 생각 없이 가도 좋다고 말한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도착하는 과정마저 정원의 일부가 된다. 나무와 풀의 이름을 알게 되면 걸음은 더 느려지고, 그 느림 속에서 자연과의 교감은 깊어진다.

『고요히 꽃잎을 바치다』는 정원 안내서도, 여행 가이드도 아니다. 대신 인간의 욕망이 개입하지 않은 공간이 얼마나 깊은 장엄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책은 정원을 바꾸기보다, 정원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쪽에 더 가깝다.

정원을 소유하지 않아도, 꾸미지 않아도, 성과를 내지 않아도 정원은 존재할 수 있다. 『고요히 꽃잎을 바치다』는 그 단순하지만 잊혀진 사실을, 고요한 풍경과 함께 독자의 눈앞에 다시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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