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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쓰는 시간, 마음을 다시 세우는 방법 『담장 – 마음과 생각을 쓰다』 (김선민, 책과나무)

필사를 넘어 ‘나의 문장’을 만드는 창작 글쓰기 노트

장세환2026년 4월 20일 오후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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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jpg출판사 제공

빠르게 읽고 넘기는 문장들 사이에서, 멈춰 서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담장 – 마음과 생각을 쓰다』는 그 흐름을 거슬러, 한 글자씩 손으로 써 내려가는 경험에 주목한다. 단순히 베껴 쓰는 필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읽고 쓰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확장하도록 설계된 창작형 글쓰기 노트다.

책은 두 축으로 구성된다. ‘마음을 다듬는 이야기’에서는 기억과 감정의 결을 따라간다. 어린 시절의 장면, 가족의 기억,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짧은 이야기 속에 스며 있고, 독자는 이를 따라 쓰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문장을 옮기는 동안 흩어져 있던 감정이 정리되고, 그 위에 덧붙이는 한 줄의 생각이 또 다른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이어지는 ‘생각을 키우는 이야기’에서는 시선이 바깥으로 확장된다. 자연, 과학, 인간의 삶을 다루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제시되고, 각각의 글 뒤에는 질문이 놓인다.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필사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사고를 넓히는 도구로 바뀐다. 읽은 내용을 자기 언어로 다시 구성하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표현의 깊이와 생각의 밀도도 함께 달라진다.

이 책이 강조하는 핵심은 ‘쓰기’라는 행위 자체다. 손으로 문장을 따라 쓰는 동안 속도가 느려지고, 그 사이에 머무는 시간이 생긴다. 그 시간은 감정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돈하는 공간이 된다. 여백 역시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독자의 문장이 들어오며 완성되는 자리로 기능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소비되는 문장과 달리, 이 책은 ‘머무름’을 전제로 한다. 빠르게 읽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을 붙잡고 나의 언어로 다시 써보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된다. 글을 읽는 사람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이동하는 지점이 바로 이 책의 방향이다.

문장을 쓰는 일이 곧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 될 때, 글은 기록을 넘어 변화의 계기가 된다. 오늘 어떤 문장을 따라 쓰고, 어떤 문장을 덧붙이느냐에 따라 내일의 생각이 달라진다. 그 조용한 변화가 쌓이는 자리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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