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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틈에서 피어난 우정, 『검은 소녀』 (쉴레만 사니 아훈도프, 틈많은책장)

100년을 건너온 아제르바이잔 아동문학의 묵직한 질문

장세환2026년 4월 20일 오후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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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소녀.jpg출판사 제공

낯선 이름의 나라에서 건너온 이야기가 의외로 지금의 우리를 향한다. 『검은 소녀』는 아제르바이잔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쉴레만 사니 아훈도프의 작품으로, 한 소녀의 삶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차별을 드러낸다. 1913년 처음 발표된 이후 여러 차례 개작을 거치며 100년 넘게 교육 현장에서 읽혀 온 작품이다.

이야기는 가난한 구두장이의 딸인 ‘검은 소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녀는 계층과 환경의 벽 속에서 성장하지만, 그 안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과 강인함을 보여준다. 반면 부유한 집안의 아이와 대비되는 삶은 어린 독자에게도 사회의 불평등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동문학이라는 틀 안에서도 폭력과 차별, 죽음과 같은 현실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아이를 보호의 대상이 아닌,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본다. 그 시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1934년 판본을 바탕으로 한 이번 번역은 당시 소비에트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텍스트를 충실히 담고 있다. 계층 대비는 더욱 선명해지고, 인물의 성격은 단순화되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사회 구조의 문제는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특정 시대의 도구적 문학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주제가 시대를 넘어 반복해서 읽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의 태도다. 어른들이 만든 경계와 차별 속에서도 두 소녀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관계를 이어간다. 폭력적인 세계 속에서도 폭력을 답습하지 않는 선택, 그 작은 태도가 오히려 이야기 전체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고전 번역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는 질문에 가깝다. 그리고 그 질문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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