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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시간 속 얼굴을 다시 마주하다, 『그 얼굴』 (강태용, 좋은땅)

사계절의 풍경 위에 겹쳐진 기억과 시대의 감정

한성욱2026년 4월 15일 오전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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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jpg출판사 제공

사람의 얼굴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오래전 스쳐간 장면 속에서도,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표정이고 눈빛이다. 강태용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 얼굴』은 그렇게 남겨진 기억의 흔적들을 한 편 한 편의 시로 불러내며, 삶의 시간과 감정을 다시 꺼내 보게 만든다.

이 시집은 봄의 따뜻한 숨결에서 겨울의 고요한 눈발까지, 사계절의 흐름을 따라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감정이 나란히 놓이면서, 계절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억을 환기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한 장면에서는 어린 시절의 ‘월사금’ 같은 사적인 기억이 떠오르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6·25 전쟁의 상흔과 같은 집단적 아픔이 스며든다. 개인과 시대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정서로 이어지는 구조다.

강태용 시인의 시선은 일상의 사소한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골목길, 돌담, 고추잠자리 같은 익숙한 대상들이 시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들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를 지닌 상징으로 바뀐다. 특히 표제작을 포함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얼굴’이라는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그것은 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자,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순수한 시절을 가리키는 표식처럼 읽힌다.

형식적으로도 이 시집은 시를 감정의 분출로만 두지 않는다. 시의 분류를 앞에 배치하며 시적 언어와 구조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이후 이어지는 작품들을 통해 그 이론을 실제 감각으로 풀어낸다. 이는 독자가 단순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가 만들어지는 방식까지 함께 따라가도록 이끈다.

무엇보다 이 시집이 오래 남는 이유는 ‘크게 말하지 않는 방식’에 있다. 삶의 고단함이나 시대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외치기보다, 작고 조용한 이미지로 남겨 둔다. 그 여백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기억을 끌어와 빈자리를 채우게 되고, 시는 비로소 개인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결국 『그 얼굴』은 과거를 회상하는 책이 아니라,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장치에 가깝다.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처럼, 시 한 편이 오래 묻어둔 기억을 건드릴 때가 있다. 이 시집은 그 순간을 조용히 만들어 내며, 각자의 시간 속에 흩어져 있던 얼굴들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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