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상세
비현실의 세계에서 더 정직해지는 추리, 『살의의 특수』 (홍정기, 책과나무)
귀신·좀비·AI라는 설정 속에서도 끝까지 논리를 유지하는 한국형 특수설정 미스터리
출판사 제공
귀신이 떠다니고, 좀비가 등장하며, 순간이동이 가능한 세계라면 추리는 느슨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먼저 나온다. 『살의의 특수』는 그 예상에서 출발해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작품집은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세계관을 전제로 하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규칙을 유지한다. 설정이 비현실적일수록, 그 안의 사건은 더 엄격한 논리 위에서만 성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귀신이 등장하는 세계에서도, 인공지능이 판단하는 상황에서도, 살인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로 설명된다.
특수설정은 이 작품에서 장식이 아니다. 오히려 제한 조건에 가깝다. 독자는 그 세계의 규칙을 이해해야만 사건에 접근할 수 있고, 이해한 이후에는 그 규칙 안에서만 단서를 해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추리는 상상력의 확장이 아니라 계산과 선택의 문제로 바뀐다.
작품 속 장면들은 이러한 긴장을 유지한다. 붉은 달 아래 혼령이 나타나는 세계, 팔각관 안에서 벌어진 독살 사건, 인간과 기술이 뒤섞인 공간 등은 낯설지만, 사건의 전개는 끝까지 현실적인 동기와 판단 위에서 진행된다. “회장님은… 독살당했습니다”라는 선언처럼, 사건은 결국 인간의 선택으로 귀결된다.
저자 홍정기는 장르소설 리뷰어로 활동해 온 이력 위에서 이 작품을 구축한다. 추리와 SF, 공포를 넘나드는 설정을 가져오되, 그것을 추리의 편의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설정이 복잡해질수록 논리는 더 단순하게,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결국 이 작품집이 보여주는 것은 대비다. 세계는 비현실로 확장되지만, 살인의 구조는 끝까지 인간 안에 머문다.
관련 기사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