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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통과한 말은 다르게 남는다, 『겨울이 지나는 곳에서 한 생이 버티고 있다』 (김희숙, 좋은땅)
그리움은 기억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출판사 제공
어떤 삶은 과거로 설명되지 않는다. 『겨울이 지나는 곳에서 한 생이 버티고 있다』는 그 과거가 끝나지 않은 채 계속 현재를 밀고 들어오는 시간의 기록이다.
이 시집의 출발점은 ‘겨울’이다. 그러나 이 겨울은 계절이 아니다. 고향을 떠나야 했던 순간, 가족과 갈라진 자리, 생과 사의 경계를 넘었던 시간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이다. 시인 김희숙에게 겨울은 시작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다.
시편들은 특정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장면으로 남는다. 사과꽃이 흩날리던 고향, 피로 물든 항구, 건널 수밖에 없었던 강. 이 이미지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삶을 가른 경계선이다. 독자는 그 경계를 따라 걸으며, ‘떠난 사람’의 시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이 시집의 중심에는 ‘버티는 생’이 있다. 그 버팀은 감정을 쏟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자세로 드러난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두고 온 아들을 향한 호명, 돌아갈 수 없는 장소에 대한 기억이 시 속에서 반복되지만, 그것은 과잉이 아니라 지속이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시간에 대한 태도다. 시인은 과거를 지나간 것으로 두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로 끌어와 다시 호흡하게 만든다. 고향은 사라진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불러야 하는 이름이고, 기다림은 끝을 향하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를 유지하는 방식이 된다.
이 시집이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개인의 경험은 분단이라는 구조를 통과하며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시는 그 구조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역사적 현실을 감각으로 환기시킨다.
결국 이 책은 묻는다.
버틴다는 것은 무엇인가. 살아남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시집을 덮고 나면, ‘겨울이 끝난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어떤 겨울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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