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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가장 가까운 사이를 가장 깊게 흔드는가, 『딸은 딸이다』 (애거서 크리스티, 문학동네)

엄마와 딸이라는 가장 친밀한 관계 안에서 사랑과 희생, 원망과 화해를 끝까지 밀어붙인 소설

장세환2026년 3월 12일 오전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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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딸이다.jpg출판사 제공

가족은 가장 익숙한 울타리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쉽게 상처가 깊어지는 관계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엄마와 딸은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으면서도 끝내 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골을 남기곤 한다. 사랑과 기대, 의존과 질투, 희생과 원망이 한데 얽히는 이 관계는 단순한 가족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딸은 딸이다』는 바로 그 모녀 관계의 복잡한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필명으로 발표한 이 소설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외동딸 세라와 살아가는 앤 프렌티스의 삶을 중심에 놓았다. 앤은 딸이 당차게 자라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면서도, 언젠가 홀로 남을 자신의 삶을 두려워했다. 그러던 중 딸이 여행을 떠난 사이 리처드 콜드필드를 만나 다시 사랑을 꿈꾸게 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라는 어머니의 재혼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앤은 사랑과 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딸을 택했지만, 그렇게 되찾은 일상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았다. 딸을 위해 희생했다고 믿는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연민과 공허로 바뀌었고, 세라를 향한 애정에도 서서히 냉기가 스며들었다. 한때 서로의 전부였던 모녀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날카롭게 서로를 찌르는 관계로 변해 갔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엄마를 무조건 희생하는 존재로, 딸을 일방적으로 상처받는 존재로 그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작가는 두 사람 모두를 사랑과 욕망, 불안과 본능에 흔들리는 인간으로 바라봤다. 앤에게는 모성만이 아니라 여자로서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세라에게는 엄마를 잃고 싶지 않은 불안과 유치할 만큼 집요한 질투가 있었다. 작품은 이 감정들을 미화하지 않고 정면으로 끌어올리며, 모녀가 서로를 사랑해서 더 미워하게 되는 역설을 날것 그대로 보여줬다.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의 대립은 더 이상 피해 갈 수 없는 지점까지 밀려난다. 눌러두었던 감정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장면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졌던 진심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드러낸다. 동시에 그 참담한 충돌 끝에서야 비로소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도 마련된다.

『딸은 딸이다』는 결국 모녀 사이의 갈등을 넘어, 사랑이란 무엇이고 희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묻는 소설이다.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이고, 딸이기 전에 역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단순하지만 아픈 진실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세대를 건너 오늘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낯설지 않은 울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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