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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밑바닥을 길어 올리다, 『편의점이 보이는 거리』 (최계옥, 실천문학사)

등단 20년 만의 첫 소설집, 궁핍과 관계의 균열을 집요하게 응시하다

장세환2026년 2월 19일 오후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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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이 보이는 거리.jpg출판사 제공

밤이 깊어도 불을 끄지 않는 편의점은 도시의 마지막 등불처럼 서 있다. 그 유리창 너머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삶의 그림자가 비친다. 200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계옥 소설가가 등단 20년 만에 첫 소설집 『편의점이 보이는 거리』를 펴냈다. 지난 시간 다듬어온 8편의 단편이 실렸다.

이 소설집이 붙드는 것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다. 생계의 위기와 함께 따라붙는 실존의 궁핍, 그리고 그 결핍이 관계를 어떻게 흔들고 파열시키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구회별」은 죽음의 문턱에서 인간의 생명력을 되묻고, 「일과」는 쪽방 노부부의 하루를 통해 빈곤이 윤리의 감각까지 잠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부유층」은 주거 불안에 내몰린 이들의 불안정한 삶을 공간의 이동과 함께 드러낸다.

표제작 「편의점이 보이는 거리」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빛 아래 놓인 소외된 존재들을 관찰한다. 통유리 너머 방치된 아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타인의 상처에서 자신의 과거를 감지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상처가 상처를 알아보는 장면에서 비로소 관계의 가능성이 열린다.

작가는 가난을 도덕적 결함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은벚나무」와 「벌레의 눈」, 「빨강」은 아이의 시선을 통해 빈곤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그리면서도, 환상과 상징을 끌어들여 서사를 확장한다. 복권을 긁는 손끝의 허망함, 색을 잃은 세계 속 붉은 망토의 이미지가 삶의 비극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소설 속 공간은 쪽방, 옥탑방, 임대 아파트, 지하 단칸방처럼 기준 미달의 주거지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머무는 곳은 단순한 현실 고발이 아니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목소리를 끌어올리려는 태도, 잊힌 삶을 알아차리려는 문장의 끈기가 이 책을 단단하게 지탱한다.

『편의점이 보이는 거리』는 도시의 그늘을 직시하게 한다. 불빛은 환하지만 그 아래는 어둡다. 그 어둠을 오래 바라보는 일, 그것이 이 소설집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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