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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속도로 버티는 법을 배우다, 『묘하게 다정한 날들』 (희서, 수류책방)

공황과 불안의 시간을 건너는 고양이의 느린 위로

최준혁2026년 2월 11일 오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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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다정한 날들.jpg출판사 제공

불안이 오래 붙어 있던 날들은 사람을 조용히 갉아먹는다. 티 나지 않게 무너지고, 숨이 얕아지고, 아무 일 없는 척 버티는 시간이 늘어난다. 『묘하게 다정한 날들』은 그 균열 한가운데서 고양이와 마주한 한 사람의 기록이다. 공황장애, 가족 관계의 불안, 흔들리는 일상처럼 누구에게나 닿아 있는 문제를 ‘고양이의 시선’으로 풀어내며, 무작정 밝은 위로 대신 묵직한 현실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다정함을 쌓아 올린다.

책은 고양이를 귀여운 위안의 소재로만 쓰지 않는다. 낯선 존재를 대하는 고양이의 태도, 거리를 재고 시간을 들이는 습관, 배가 부르면 멈출 줄 아는 절제 같은 삶의 감각이 저자의 생활로 스며든다. 무리하게 견디던 방식이 흔들릴 때, 고양이는 더 빠른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속도를 늦추고, 오래 바라보고, 지킬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라고 몸으로 가르친다. “친밀해지기 위해 나섰다가는 속도만 되레 늦출 수 있다”는 문장은 관계와 회복을 다루는 이 책의 리듬을 상징한다.

구성은 개인의 붕괴와 회복에서 시작해 가족과 관계로 확장되고, 다시 사회의 가장자리로 시선을 넓힌다. 사춘기 아들과의 긴장, 고양이를 싫어하던 남편의 변화, 돌봄이 사랑보다 책임에 가깝다는 깨달음이 에피소드마다 촘촘히 이어진다. 고양이 합사처럼 작은 사건도 ‘함께 산다는 것’의 본질로 번진다. 누군가를 바꾸려 들기보다, 상대의 속도를 존중하는 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서 관계를 다시 세우는 일. 그 과정은 자주 어긋나고 종종 서늘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책 속에서 반복되는 이미지 중 하나는 그루밍이다. 고양이가 하루의 절반을 공들여 자신을 가꾸듯, 사람도 마음을 ‘빗질’하지 않으면 금세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 따라온다. 세상의 소음을 낮출 수 없다면 마음의 데시벨을 낮춰야 한다는 대목은, 공황을 겪는 이들의 감각을 과장 없이 건드린다. 회복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작은 수행에 가깝다는 메시지가 끝까지 흐른다.

『묘하게 다정한 날들』은 “괜찮아질 거야”를 쉽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대로 괜찮지 않은 날들을 그대로 놓고, 그럼에도 다시 숨을 고르게 만드는 방법을 보여준다. 고양이처럼 적당히, 고양이의 속도로, 무너지기 전에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기록이 조용히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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