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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의 기준 밖에서 삶을 완성하는 고독, 『불필요한 여자』(라비 알라메딘, 이다희 옮김, 뮤진트리)
“필요 없다”는 말이 한 사람의 생을 얼마나 쉽게 밀어내는지, 그리고 그 바깥에서 어떻게 존엄이 지켜지는지를 끝까지 따라가는 소설
출판사 제공
베이루트의 오래된 아파트 한켠, 알리야는 혼자 산다. 세상과 끊어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하루는 텅 비지 않는다. 책을 읽고, 문장을 옮기고, 기억을 다시 배치하며, 전쟁과 혼란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 한가운데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시간을 붙잡는다. 『불필요한 여자』는 사회가 “필요 없다”고 낙인찍는 노인 여성, 고독한 지성, 주변부의 삶을 정면으로 비추면서도, 그 삶이 얼마나 단단한 내면의 윤리와 미학으로 완성되는지 조용히 증명한다.
이 소설의 아이러니는 제목에서 시작한다. ‘불필요한 여자’는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내린 판결이 아니라, 여성을, 노인을, 혼자 사유하는 존재를 주변으로 밀어내 온 사회의 시선을 비틀어 드러내는 말이다. 알리야는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대신 누구도 요청하지 않은 번역을 50여 년 동안 이어 온다. 1월 1일마다 새 번역을 시작하고, 연말이면 원고를 묶지 않은 채 상자에 넣어 보관한다. 출간도, 명성도, 보상도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번역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면, 시간이 너무 잔인하게 흘러갈 테니까.
알리야의 고독은 결핍의 표정만을 띠지 않는다. 이 작품은 고독을 실패의 결과로 소비하지 않고, 세계와 관계 맺는 한 방식으로 다룬다. 전쟁의 기억과 가족사, 반복된 배제의 순간들이 알리야의 말투와 사고를 날카롭게 만들지만, 그 날카로움은 자기를 지키는 힘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 그녀는 문학과 시를 붙잡는 이유를 고백하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자학이 아니라, 현실이 요구하는 성취와 효율의 언어에 포획되지 않으려는 저항처럼 들린다.
라비 알라메딘은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과 사유를 엮어,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하나의 세계가 되는지 보여 준다. 베이루트라는 도시는 배경을 넘어 알리야의 감정과 맞물린 또 하나의 인물로 기능하고, 그 도시의 상처는 알리야의 언어를 통해 문학과 정치, 노화와 비탄, 회복력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여성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를 어떤 기준으로 필요와 불필요로 나누는지, 그 기준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리고 그 바깥에서 삶이 어떻게 더 충만해질 수 있는지 끝까지 묻는다.
끝내 이 책이 남기는 질문은 단순하다. 누군가에게 호출되지 않아도, 한 사람의 삶은 스스로의 기준으로 충분히 빛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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