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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동안 마음이 쉬어간 자리들 『마음의 장소』 출간(나희덕, 달)
세계의 골목과 한국의 섬을 천천히 건너며, 공간을 ‘마음의 자리’로 바꾼 47편의 산문
출판사 제공
나희덕 시인은 오래도록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연대할지 묻는 문장을 써왔다. 산문집 『마음의 장소』는 그 질문을 ‘걷기’라는 몸의 리듬에 실어 건넨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튀르키예의 도시부터 회산 백련지, 전주 한옥마을, 백운동 별서정원, 소록도와 나로도까지, 시인은 많은 곳을 천천히 걸으며 사진과 함께 사유를 기록했다. 걸음을 멈추고 오래 머문 순간, 공간은 장소가 되고, 그 장소는 지친 마음이 내려앉는 자리로 남는다.
이 책의 핵심은 여행기보다 산책자의 태도에 가깝다. 생각이 넘칠 때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두 다리를 따라 걷기 시작하고, 그러다 우연히 생각이 멎는 지점을 만난다는 고백이 책 전반의 숨결을 만든다. 목적지를 향해 서두르는 발이 아니라, 삶을 견디기 위해 리듬을 찾는 발. 그래서 『마음의 장소』에서 ‘걷기’는 이동이 아니라 회복의 기술이 된다.
목차는 네 개의 부로 구성돼, “저 구름을 가져갈 수 있다면”부터 “한 접시의 가을이 익어간다”까지 계절과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른다. 묘비 대신 벤치, 구부러진 손가락, 물 위의 집, 터미널, 자물쇠, 카파도키아의 창문, 방하착 같은 단어들이 암시하듯, 시인의 관심은 화려한 사건보다 일상의 물성에 닿아 있다. 낡은 것과 느린 것, 구부러진 것과 비어 있는 것에서 삶의 자세를 다시 배운다.
인상적인 지점은 시선이 늘 ‘관계’로 향한다는 점이다. 터미널에서 낯선 이들이 기다림을 매개로 쉽게 친구가 되는 순간을 포착하고, 타인의 시선으로만 확인되는 ‘뒷모습’에서 두려움과 안심이 동시에 깃드는 인간의 조건을 읽는다. 자연을 향한 질문도 결국 인간의 방식으로 돌아온다. 새들의 자유를 바라보며 정주의 욕망을 되묻고, 바람에 낮게 엎드린 존재들에게서 더 낮아지는 생존의 지혜를 배운다.
문장은 단정하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내려놓아라” 같은 문장도 위로로만 흐르지 않고, 내려놓았다고 믿는 자만을 다시 의심하게 만든다. 끝내 책이 건네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마음을 붙잡아 줄 좌표다. 살다 지치고 외로울 때 오랜 친구를 찾아가듯,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 독자는 그 자리들을 따라 걸으며, 자기 안에도 비슷한 ‘마음의 장소’가 있음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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