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상세

newbooks

『자연이 법을 어길 때』 출간(메리 로치, 열린책들)

야생과 인간의 충돌을 과학으로 다시 묻다

장세환2025년 12월 17일 오후 2:59
1,089

자연이 법을 어길 때.jpg출판사 제공

동식물의 ‘본능’과 인간 사회의 ‘법’이 맞부딪히는 순간을 추적한 과학 르포 에세이 『자연이 법을 어길 때』가 열린책들에서 번역 출간됐다.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 저술가’로 불리는 메리 로치는 곰, 표범, 원숭이, 갈매기, 심지어 오래된 나무와 콩까지 등장하는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 책은 “문제를 일으키는 건 자연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갈등을 줄이기 위해 과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교양 과학서다.

이 책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사람을 다치게 한 곰, 농작물을 망치는 원숭이, 비행기를 위협하는 새, 길가에 쓰러질지 모르는 나무 등, 인간의 눈에는 ‘문제’로 보이는 존재들이다. 로치는 콜로라도 애스펀의 뒷골목, 인도령 히말라야의 산촌, 바티칸 성 바오로 광장처럼 갈등의 최전선으로 직접 찾아가, 곰 관리자, 포식 동물 공격을 조사하는 법의학 수사관, 위험 나무를 판정하는 벌목·발파 전문가, 조류 충돌을 막는 공항 담당자 등 다양한 현장 전문가를 만난다. 동물 범죄 수사, 곰 재배치 정책, 표범의 식인 사고, 로드킬과 생태 통로, 공항의 새 퇴치작전까지, 개별 사건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우리는 자연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제목처럼 책은 동물을 ‘법을 어기는 범죄자’가 아니라, 그저 본능대로 행동할 뿐인 존재로 바라본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곰은 인간이 남긴 냄새나는 쓰레기를 발견했을 뿐이고, 관광객의 간식을 낚아채는 원숭이는 반복된 ‘먹이 주기’에 학습된 결과다. 저자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가 “조심성 대신 대담함을, 대담함 대신 공격성을 부르는 가장 빠른 길”임을 보여주며, 감정적인 비난보다 환경을 바꾸는 예방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곰을 다른 산으로 옮기고, 표범을 포획해 멀리 보내고, 사람을 위협한 개체를 사살하는 방식이 얼마나 자주 문제를 다른 장소로 옮길 뿐인지, 다양한 통계와 사례로 짚어낸다.

흥미로운 장면은 인간의 기술과 상상력이 개입하는 지점에서 더 풍성해진다. 공항 활주로에서는 수만 마리의 바닷새가 비행기와 충돌하는 ‘조류 충돌’을 막기 위해 폭음, 불꽃, 레이저, 훈련된 개, 모형 맹금류 등 온갖 방법이 동원된다. 바티칸 성 바오로 광장에서는 갈매기를 쫓기 위해 레이저 포인터까지 등장한다. 도로 위의 로드킬을 줄이기 위해 설치한 생태 통로와 동물 감지 장치, 오래된 나무를 〈위험 나무〉로 판정할 때 고려해야 할 과학적 기준 등도 차례로 소개된다. 이 과정에서 메리 로치는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 치열한 과학 논쟁과 행정 절차 사이로 “나무가 죽는 데도 ‘단계’가 있다” 같은 농담을 끼워 넣으면서도, 결국 그 나무가 수많은 생명에게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더 ‘미래의 기술’로 확장된다. 늘어나는 들쥐나 특정 새, 외래종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면역 피임 기술, 그리고 유전자를 개체군 전체에 퍼뜨려 특정 종을 사실상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유전자 드라이브’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무인도 설치류 박멸을 위해 설계된 유전자 드라이브 실험을 따라가며, 이 기술이 가져올 이익과 함께 “예상치 못한 곳까지 퍼져 나갔을 때의 생태적·윤리적 파장”을 집요하게 묻는다. 자연을 ‘손봐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태도가 결국 또 다른 문제를 부른다는 점을, 과학자의 설명과 현장 인터뷰를 빌려 차분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죽은 몸은 과학이 된다』, 『인간은 우주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메리 로치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이번 책은 과학 교양 독자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어려운 이론 대신 생생한 에피소드와 현장 취재를 앞세우는 그의 글쓰기는 과학적 사실과 웃음을 동시에 건네며, 동식물을 대하는 우리 시선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리처드 도킨스, 유발 하라리 등의 책을 번역해 온 과학 번역가 이한음이 우리말을 맡아, 특유의 재치와 리듬감을 자연스럽게 살렸다. 과학, 환경, 동물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는 물론, 기이하고 흥미로운 ‘현실 과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펼쳐 볼 만한 책이다.

결국 『자연이 법을 어길 때』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문제는 자연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우리에게 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다시 가늠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묵직하지만 유쾌한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관련 기사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출간 (신시열, 이콘)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출간 (신시열, 이콘)

6월 10일 오후 3:56
8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 『자가 수리점』 출간 (헨리 비일러, 사이몬북스)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 『자가 수리점』 출간 (헨리 비일러, 사이몬북스)

6월 10일 오후 3:52
11
사라지는 손목, 남는 체온 ― 『솜사탕 증후군』 (박윤일, 파란)

사라지는 손목, 남는 체온 ― 『솜사탕 증후군』 (박윤일, 파란)

6월 10일 오후 3:45
8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