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상세
꽁꽁 얼어붙은 마음 위로 건너간 한 사람,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 출간(김주하, 매일경제신문사)
국민 앵커 김주하, 상처를 딛고 희망의 목소리를 기록하다
출판사 제공
국민 앵커로 불리던 김주하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에세이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를 펴냈다. 방송 화면 뒤에 숨겨 두었던 결혼과 가정폭력, 이혼의 상처와 홀로서기 과정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마주한 책이다. 동시에 그는 자립준비청년 등 우리 곁의 보이지 않는 약자들에게로 시선을 확장하며 “뉴스를 넘어 사람에게 닻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풀어놓는다. 깊은 절망에서 건져 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흔들리는 시대를 버티는 법을 묻는 독자에게 삶의 지혜와 위로를 건네는 에세이다.
책은 꿈 많던 여고생이었을 때부터 시작한다. 잉크 냄새가 가득한 신문을 끼고 살던 소녀는 “목소리로 세상과 연결되겠다”는 다짐으로 언론인의 길을 택한다. 여성 앵커에게 유난히 높았던 취업의 문턱, 중저음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던 오디션, “여자 아나운서”라는 이름이 덧씌운 편견을 통과해 메이저 방송사 메인 뉴스 단독 앵커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MBC 아나운서를 넘어 기자에 도전하고, 독도 취재 현장과 각종 뉴스 전면에 서며 ‘줏대’ 하나로 버텨온 언론인 김주하의 뒷이야기가 구체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이어진다.
무대 뒤의 삶은 정반대의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모두가 부러워하던 결혼,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로 포장됐던 일상이 남편의 기만과 폭력으로 무너지는 과정이 페이지를 따라 서서히 드러난다. 결혼 전력과 반복된 거짓말, 방탕한 씀씀이와 가정폭력, 아이에게까지 뻗어간 폭력의 손길을 막기 위해 공증각서를 받고, 한밤중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던 순간들이 솔직한 문장으로 기록된다. “세상의 진실을 전해야 하는 앵커가 정작 자기 삶의 거짓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고백은 공인의 이름 뒤에 가려졌던 한 여성의 깊은 수치심과 자책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혼 소송 과정에서 마주한 법정의 풍경도 책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커터칼 위협과 뒤집힌 진술, 해킹된 이혼 자료와 도둑맞은 차량, 본인도 모르게 개설된 계좌까지, 일상과 존엄이 동시에 침해되는 경험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저자는 폭로보다 질문에 방점을 찍는다. 왜 피해자가 침묵을 강요당하고, 왜 폭력의 흔적이 여전히 가벼이 취급되는지,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피해 생존자로서 마주친 한국 사회의 민낯을 차분하게 짚는다. “나의 상처는 더 이상 나만의 아픔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전환점이 된다.
결국 그는 다시 카메라 앞으로 돌아온다. 메인 뉴스로의 복귀, 일과 아이 둘만을 붙들고 버텨야 했던 홀로서기, 양육비 한 푼 받지 못한 채 생존을 이어가야 했던 시간들이 이어진다. MBN으로 자리를 옮긴 뒤 선보인 코너 ‘김주하의 그런데’, ‘이 한 장의 사진’은 앵커의 목소리를 단순한 전달자에서 해석자이자 질문하는 사람으로 확장시키며 큰 호응을 얻었다. 뉴스의 형식을 바꾸려던 이 실험은, 저자가 말하는 “완벽이 아닌 온전함”을 향한 시도이기도 했다.
후반부에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자립준비청년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에게로 옮겨간다. 보호 시설을 떠나 만 18세에 갑자기 홀로 서야 하는 청년들, 제도의 빈틈 속에서 보이지 않는 상처를 끌어안고 버티는 이들의 현실이, 저자가 겪은 고립과 두려움의 시간과 겹쳐진다. 그는 자립준비청년 명예멘토로 활동하며 “누군가의 거울이 되어 그 안의 가능성을 비춰주는 일”을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책무로 받아들인다. 아픔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누군가를 붙잡는 힘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 저널리즘의 역할, 진실의 무게와 공감의 윤리를 이야기하며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라고 강조한다. 화면 앞에서 차분한 얼굴로 뉴스를 읽어오던 앵커가 이제는 한 사람의 생존자로서, 또 다른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으로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은 과정을 정리하는 대목이다. 얼어붙은 한강 위로 위태롭게 걸어가던 고양이의 뒷모습처럼, 독자 역시 각자의 얼음 위를 지나온 발자국을 떠올리게 된다.
꽁꽁 언 마음 위로 한 걸음씩 건너온 김주하의 목소리는, 넘어질 것 같은 오늘을 간신히 버티는 이들에게 “이제는 조금 기대도 괜찮다”고 말하는 초대장에 가깝다.
관련 기사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