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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의 불꽃이 된 대한제국 황손, 『조선의 왕자, 이우』(은미희, 잉걸북스)

일본군 장교가 된 조선의 왕자, 끝까지 조선인으로 살고자 했던 이우의 삶을 복원한 역사소설

장세환2026년 8월 4일 오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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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이자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황손 이우(李鍝). 일본군 장교의 군복을 입었지만 끝까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던 그의 삶이 한 편의 역사소설로 되살아났다. 은미희 장편소설 『조선의 왕자, 이우 - 히로시마의 불꽃이 된』은 잊혀진 대한제국 황손 이우의 삶을 통해 식민지 시대 조선 황실의 비극과 인간의 존엄, 그리고 역사적 책임을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이다.

이우는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의 차남으로 태어나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시대에 태어난 황손이라는 운명은 그에게 자유로운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은 조선 황족들을 철저히 통제했고, 이우 역시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일본군 장교의 길을 걷게 된다.

소설은 이러한 역사적 모순 속에 놓인 이우의 내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일본군 장교라는 위치와 조선 황족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의 고뇌를 밀도 있게 그려내며,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닌 한 인간의 선택과 신념에 주목한다.

작품 속 이우는 자신에게 강요된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본이 정한 혼인과 삶의 궤적을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사랑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특히 정략결혼을 강요받는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먼저 혼약을 발표하려는 모습은 그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또한 소설은 일본군 장교가 된 이우의 복잡한 심리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군복을 입고 칼을 차고 있지만 그 칼이 결국 자신의 동족을 향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느끼는 괴로움과 죄책감은 식민지 조선인 엘리트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은미희 작가는 이우를 일방적인 독립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현실 속에서 흔들리고 고민하며 결단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접근은 역사소설로서 작품의 설득력을 더욱 높여준다. 독자들은 완벽한 영웅이 아닌, 시대와 운명에 맞서 고뇌했던 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소설의 또 다른 축은 독립운동과 민족 정체성이다. 작품 속 이우는 독립군을 감시하라는 일본군의 임무를 받지만, 오히려 독립운동 세력과 접촉할 기회를 얻게 된 현실에 희망을 품는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철저히 숨기면서도 조국을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정은 역사적 기록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해 인물의 내면을 더욱 풍성하게 그려낸다.

작품의 후반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과 맞물린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결국 이우의 생애를 마감하게 만든다. 소설은 섬광과 함께 모든 것이 멈춰버린 순간을 비장하게 묘사하며,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희망 중 하나였던 인물의 비극적 최후를 강렬하게 그려낸다.

은미희 작가는 역사와 문학의 균형을 섬세하게 유지한다. 작품은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인물의 감정과 심리, 관계를 소설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다. 안개와 까마귀, 불꽃과 같은 상징적 이미지는 서사 전반에 짙은 정서를 부여하며 독자의 몰입을 돕는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단순히 한 황손의 비극적 삶을 복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역사를 아는 일은 나를 아는 일"이라는 작가의 문제의식처럼,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나라를 잃은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선택과 갈등, 그리고 존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은미희 작가는 삼성문학상 수상 경력을 지닌 중견 소설가로, 『소수의 사랑』, 『나비야 나비야』, 『흑치마 사다코』 등 다양한 장편소설을 발표해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역사적 인물 이우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또 다른 단면을 조명한다.

대한제국은 사라졌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조선의 왕자, 이우 - 히로시마의 불꽃이 된』은 잊혀진 황손의 삶을 통해 조선 황실의 마지막 세대가 겪었던 비극과 저항, 그리고 인간적 고뇌를 생생하게 복원한 역사소설이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한 인물을 새롭게 만나고, 거대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을 지키려 했던 인간의 모습을 깊이 되새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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