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이 1960년대 대한민국으로 소환됐다. 『이상우의 임꺽정 1963~1965』는 추리소설의 대가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해 온 이상우 작가가 채국산인이라는 필명으로 1963년부터 1965년까지 <대구일보>에 연재했던 『신설 임꺽정』을 복원한 작품이다. 반세기가 훌쩍 넘는 세월이 흐른 뒤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번 책은 단순한 고전 복간을 넘어 한국 현대문학과 언론사에 남겨진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탄생 배경에 있다. 이상우 작가는 1961년 발표한 『신설 손오공』에서 당시 정치 현실을 풍자했다가 계엄군법회의에 회부되는 일을 겪었다. 이후 『신설 임꺽정』을 연재하면서도 사형 협박을 받을 정도로 정치권의 감시 대상이 됐다. 작품 속에는 쿠데타와 특별법, 권력기관, 관제 동원 등 당시 군정 시절의 사회 풍경이 우회적이고도 노골적인 풍자의 형태로 녹아 있다.
소설은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1960년대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임꺽정과 백정 집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등장인물들의 언행과 사건들은 당시 정치 상황과 사회 현실을 연상시키도록 구성되어 있다. 독자들은 역사소설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현실 풍자극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의 가장 큰 무기는 해학과 상상력이다. 조선시대 인물들이 현대적 개념을 사용하고, 당시 대중문화와 국제정세, 정치 사건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작품 속으로 들어온다. 마릴린 먼로와 소피아 로렌 같은 세계적 스타들이 언급되고, 계엄령과 제네바 협정, 국제정치 용어가 산적들의 대화 속에 등장한다. 역사와 현실, 풍자와 코미디가 자유롭게 뒤섞이는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의 퓨전 사극이나 웹소설을 연상시킬 정도로 파격적이다.
문학적 가치뿐 아니라 사료적 가치도 주목된다. 이번 복간본에는 신문 연재 당시 함께 실렸던 이영조 화백의 삽화 472점이 복원 수록됐다. 또한 현대 독자들이 당시 시대적 배경과 풍자의 대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261개의 주석이 더해졌다. 단순히 텍스트를 재출간하는 수준을 넘어 원작이 탄생했던 시대적 맥락까지 함께 보존하려는 시도가 반영됐다.
저자 이상우는 한국 추리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1962년 등단 이후 400편이 넘는 장·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한국추리작가협회와 한국디지털문인협회를 이끌며 후학 양성에도 힘써왔다. 동시에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스포츠서울 등 주요 언론사의 편집국장과 대표를 역임하며 한국 언론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문학과 언론 현장을 모두 경험한 그의 이력은 작품 속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풍자 정신의 배경이 되었다.
『이상우의 임꺽정 1963~1965』는 단순한 오락 소설이 아니다. 권력을 향한 비판이 위험했던 시대에 젊은 작가가 웃음과 해학을 무기로 현실을 응시했던 기록이며, 한국 정치풍자문학의 한 계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63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과 풍자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현재진행형의 고전으로 읽힐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