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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부터 읽을지 독자가 결정하는 소설, 『I』 출간(미치오 슈스케, 북스피어)
미치오 슈스케가 두 개의 장 중 읽는 순서를 독자가 직접 정하게 하는 실험적 구조의 미스터리를 선보인다.

출판사 제공
소설은 대개 첫 장에서 시작해 마지막 장으로 끝난다. 그러나 미치오 슈스케의 『I』는 독자에게 먼저 묻는다. 어느 장부터 읽을 것인가. 북스피어가 출간한 이 작품은 제목부터 위아래를 뒤집어도 같은 형태가 되는 알파벳 ‘I’를 내세운다. 모든 편집자가 불가능하다고 만류했다는 설정에 작가는 정면으로 도전했다.
『I』는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자가 어느 장부터 읽을지를 직접 정해야 한다. 목차에는 ‘페트리코’와 ‘지오스민’이 놓인다. 페트리코는 비가 내릴 때 흙과 공기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떠올리게 하고, 지오스민 역시 흙냄새와 관련된 감각을 연상시킨다. 두 단어는 제목만으로도 서로 이어져 있지만, 어느 쪽이 먼저인지에 따라 독자의 경험은 달라질 수 있다. 읽는 순서가 작품 해석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미치오 슈스케는 일본 최고 권위의 나오키상을 비롯해 본격미스터리대상, 추리작가협회상, 야마모토슈고로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그는 서술트릭을 통한 충격적인 반전과 생생한 감정의 전달을 특기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I』는 그런 작가가 형식 자체를 미스터리의 장치로 삼은 작품으로 읽힌다. 이야기가 무엇을 숨기는가뿐 아니라, 독자가 어떤 길로 들어오느냐가 중요해진다.
일반적인 반전 미스터리는 독자가 주어진 순서를 따라간 뒤 마지막에 세계가 뒤집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나 『I』는 시작점부터 독자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이 선택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먼저 읽은 장이 뒤에 읽는 장의 의미를 바꾸고, 첫 인상이 두 번째 장의 해석을 흔들 수 있다. 독자는 소설을 읽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구조에 참여하는 사람이 된다.
제목 ‘I’도 여러 층위로 읽힌다. 영어의 나를 뜻하는 글자이면서, 위아래를 뒤집어도 형태가 유지되는 기호다. 정면과 뒤집힘, 나와 또 다른 나, 처음과 끝의 관계가 제목 안에 압축되어 있다. 작가가 왜 이 단순한 문자 하나를 제목으로 삼았는지, 독자는 두 장의 순서를 결정하는 순간부터 그 의미를 추적하게 된다.
『I』는 새로운 형식을 위한 형식 실험에만 머물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치오 슈스케가 꾸준히 탐구해 온 반전과 감정의 전달은 이번 작품에서도 핵심 장치가 된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독자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과연 옳았는지 되묻게 된다. 소설의 문은 하나가 아니며, 그 문을 여는 순서마저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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